[한중FTA 발효 1년] 거침없는 中의 '산업굴기'...韓, 수출효과는커녕 안방마저 내줄 판

농산품 닫느라 中 공산품개방 10년 66%에 그쳐
비교우위 LCD·냉장고 등 관세철폐 10년 걸려
문화·유통 등 유망 서비스시장도 사드에 발목
"통상은 외교의 한축...원만한 관계유지 힘써야"

“솔직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10년, 20년 후에 우리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오전 만들어 빠르면 오후에 내다 팔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과 무역장벽을 없앴다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지난 2014년 한중 FTA 협상이 타결된 후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비공식석상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FTA 전략은 농업 부문의 일부 시장을 여는 대신 상대국 공산품 시장을 개방해 수출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중 FTA는 달랐다.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 급증으로 인한 국내 농업 기반 훼손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는 농수산 부문의 시장개방을 대폭 줄이는 대신 향후 10년간 공산품 개방률(무관세) 역시 중국 측 66.4%, 한국 79.9%로 낮춰 잡았다. 애초부터 제조업 수출 기대 효과가 낮았던 것이다. 올해 중국 수출은 지난해보다 12% 감소했다. 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5.9%)보다 두 배 이상 수출 감소폭이 컸다. 특히 우리 주력 품목인 가전의 경우 중국 수출(-35%)이 줄어든 반면 수입은 올해 9.2% 늘어 지난해보다 증가폭(0.2%)이 커졌다. 컴퓨터(8.1%)와 반도체(1.2%), 자동차부품(0.3%)도 수입액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국내 시장마저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농산품 닫느라 공산품 개방 느려=한중 FTA에서 우리나라는 국내적으로 민감한 농업 부문의 문을 거의 잠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에서는 농수산품의 개방을 말하는 자유화율이 98.9%(품목 수 기준)에 달한다. 한·EU는 97.2%, 한·호주는 88.6%다. 하지만 한중 FTA는 70%, 수입액 기준 자유화율은 40% 불과하다. 국내적으로 반발이 일 수 있는 쌀과 감자·쇠고기·닭고기·사과·고추·마늘 등 대부분의 민감 품목의 관세를 낮추지 않기로(양허 제외) 한 결과다. 우리 농산품의 문을 걸어잠그는 대가로 중국 공산품 시장의 문도 크게 열지 못했다. 거의 100%의 공산품 시장을 개방했던 한미 FTA와 달리 한중 FTA의 공산품 개방률은 90.1%에 불과하다. 부분 감축(6%)을 제외하면 20년 내에 85.1%만 관세가 사라진다. 특히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기밥솥 등은 10년에 걸쳐 관세가 사라진다. 향후 수출이 늘어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컬러TV는 아예 개방에서 제외됐다. 특히 양허 품목에서 제외된 자동차는 올해 중국 수출이 5,000만달러로 수출이 92% 감소했다.

◇힘 빠지는 대중 수출 주력품목=문제는 관세 철폐로 경쟁력을 갖출 시기에 이미 중국기업이 우리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허 제외되거나 10년에 걸쳐 관세가 사라지는 가전제품은 올해 10월 기준 8억5,000만달러를 수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해(15억4,000만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대중 수출액 규모가 가장 큰 반도체 수출은 올해 197억달러(10월 확정치 기준)로 전년 대비 15% 줄었다. 대중 반도체 무역 흑자 규모도 2014년 180억달러를 찍은 후 지난해 164억달러, 올해 105억달러까지 위축됐다. 2013년 대중 수출액이 250억달러에 육박하던 평판디스플레이도 올해 10월 기준 151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유화 제품은 중국이 기술개발로 자급률을 높이고 있는 대표적인 품목. 섬유와 가전, 컴퓨터의 경우는 아예 수출이 늘기는커녕 수입이 대폭 확대되면서 최근 몇 년간 대중 무역 적자가 쌓이고 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잘하던 제품들은 중국이 대부분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다”면서 “더 잘 팔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망’ 서비스 시장마저 사드 불똥=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할 해법도 마땅치 않다. FTA 체결 당시 우리는 중국 문화·콘텐츠·환경·유통 시장을 개방하는 ‘서비스협정’도 맺었다. 다만 이 협정에서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활동할 때 중국 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최혜국 대우’ 조항은 빠졌다. 또 우리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일일이 나열한 ‘포지티브’ 방식으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양국은 협정 발효 후 2년 안에 서비스협정을 개선하는 협상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연내 협상을 열기로 한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갈등이 깊어진 뒤 중국 측에서 협상 날짜를 주지 않고 있어서다. 이러는 사이 중국은 한국 연예인들의 자국 활동을 제한하는 금한령을 지시하는 등 대중국 서비스 교역은 악화하고 있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은 외교의 한 축”이라며 “양국 교역이 좋아지려면 외교적으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