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스토리] 황해령 루트로닉 대표 "레이저 의료기기 개척…글로벌 진출…끝없는 산 넘어왔죠

IMF…허가 지연…창업 20년, 성장에 시련 연속
색소질환·문신제거 개발했지만 한국산에 콧방귀
끊임없이 접촉시도…대만에 1호 수출로 날갯짓

He is… △1957년 대구 △1982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졸업 △1991년 미 코네티컷주립대학 경영대학원 수료 △1988~1991년 미 레이저시스템즈 아시아지역 마케팅 부사장 △1997년 루트로닉(옛 맥스엔지니어링) 창업 △2003년 무역 진흥 공로 대통령 표창 수상 △2008년 벤처산업 진흥공로 대통령 표창 수상 △2009년 국민보건의료향상 공로 보건복지부 표창 수상 △2010·2011년 IT산업 발전공로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수상 △2012년 보건산업 대상 수상 △2013년 ‘산업포장’ 수상 △현재 벤처기업협회, 코스닥협회 부회장, 전자
마흔 살이 되던 해인 지난 1997년 직원 6명과 함께 회사를 세웠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던 ‘레이저 의료기기’ 분야였다. 당시 한국산 레이저 의료기기는 전무했고 비슷한 성공 사례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미국 레이저 의료기기 회사에서 부사장까지 올랐던 경험을 바탕 삼아 기세 좋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때마침 찾아온 외환위기(IMF) 탓에 자금난을 겪기도 하고 힘들게 개발한 의료기기의 허가가 계속 지연되는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 세계 6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연 매출 800억원대의 강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레이저 의료기기 업체로 평가받는 루트로닉과 황해령(59) 대표의 이야기다.

루트로닉은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다. 한순간 한순간을 되짚어보면 쉽게 풀린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 과정이 싫지만은 않았다는 게 황 대표의 회고다.

“고비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걸 넘을 수 있는 산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타고나길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고민하며 오히려 힘을 받는 타입인 것 같아요. ‘못 넘어갈 것 같은 산을 지금 넘어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지난 20년이었죠.”

물론 황 대표가 ‘넘어간 산’ 중에는 특별히 힘겨웠던 산들도 있었다. 우선 첫 수출의 기억. 창업 후 2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색소 질환과 문신 제거에 효과적이고 가격은 외국산보다 훨씬 저렴한 레이저 기기 ‘스펙트라’를 개발해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막상 사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 해외 기업들의 콧대가 높았다.

“한국 업체가 제품을 개발했다고 얘기를 하니 다들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 국내에서는 병원을 직접 찾아다니며 시연도 하고 영업도 하며 조금씩 신뢰를 얻어가기 시작했지만 해외는 좀 더 시간이 걸렸죠.” 결국 자체 개발 의료기기 1호를 대만에 수출하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접촉을 시도한 것이 비결이었다. 황 대표는 “처음에는 아무리 자료를 보내고 연락을 해도 관심도 없더니 어느 날 회사를 한번 찾아오더니 직접 경험해보고 구매를 결정했다”며 “이제 우리도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1호 수출 기기를 사간 대만 기업의 만족도가 높았다. 일본 고객을 소개받아 약 1년 반 만에 일본 수출도 성사됐다. 이후로는 술술 풀렸다. ‘믿을 만한 기업’이라는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루트로닉의 노하우도 축적됐다. 황 대표는 “1호기를 수출했던 대만의 기업은 아직도 우리의 고객”이라며 “일본과 미국은 수출 비중이 높아 현지 법인을 설립해 직접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반부종 치료기기, 미국시장 뚫은 게 큰 변곡점


年매출 2,000만원서 800억, 강소기업으로 우뚝

R&D 중심 미지의 영역에 도전…퀀텀점프 할 것



황 대표가 꼽는 두 번째 변곡점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6년간에 걸쳐 개발한 황반부종 치료 레이저기기 ‘알젠(R:GEN)’이 10월 미국 FDA의 판매 허가를 받은 순간이다. 국내 기업이 안과 치료 장비로 미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은 루트로닉이 처음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레이저기기의 미판매 승인은 피부미용 기기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를 정도로 힘들었죠. 제출 서류를 모아보니 총 1,200쪽에 이르더라고요. 그동안 워싱턴DC에 모여서 팀원들끼리 전략회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승인받던 날 담당 직원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알젠의 FDA 승인으로 피부미용 레이저 전문이던 루트로닉은 치료용 기기로 사업 범위를 한 차원 더 넓혔다. 황 대표는 “회사 설립 당시 미국만큼 훌륭한 피부미용 레이저기기를 만들어 수출기업이 되자는 목표로 시작했지만 부가가치가 좀 더 크고 어느 국내 기업도 하지 못한 분야에 도전해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며 “눈 치료는 예민하면서도 세심한 기술이 필요해 레이저 기술을 적용하기 가장 좋은 분야라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알젠’ 개발을 시작하던 당시 부친이 당뇨 황반부종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황반부종은 당뇨를 앓는 중년이 합병증으로 걸리는 질환이에요. 심할 경우 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망막에는 시세포의 50% 이상이 모여 있어 수술도 쉽지 않아요. 적절한 치료법 개발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으리라 여겼죠.” 우여곡절 끝에 개발된 ‘알젠’은 내년부터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병원에 진출한다. 미국에서는 5개의 대형 병원과 제품 공급 협의를 진행 중이다.

두 번의 변곡점을 넘어 20주년을 눈앞에 둔 지금의 목표는 이른바 ‘퀀텀 점프(대약진)’다. “이제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다”며 얼굴에 자신감도 묻어났다. 루트로닉의 성장사는 ‘벤처의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6명으로 시작한 직원 수는 270명에 이르고 1998년 2,000만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은 올해 800억원까지 늘었다. 창업 첫해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고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이 70%에 이른다는 것이 회사의 큰 자랑이다. 국내외 보유 특허가 200개가 넘는데도 여전히 매출액의 20%를 R&D에 투자하는 등 핵심 경쟁력인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황 대표는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과 더불어 앞으로는 전략적 경영을 통해 그동안 닿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까지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미국 및 유럽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미국·유럽에서 매출의 60~70%를 벌어들이는 기업들과 M&A를 협의 중”이라며 “아시아 시장 중심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미용전문 합자 의료법인 ‘루둥루트로닉’을 꾸려나갈 계획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유상증자를 실시해 6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중 약 500억원은 기업 인수에 활용하고 나머지는 한중 합자회사 등에 투자할 방침이다.

지치지도 않고 성장을 말하는 모습을 보니 최종 목표가 궁금해졌다. 뜻밖에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고 이제 다 자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물론 구체적인 지표야 그때그때 만들어야지만 목표는 어떤 시점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계속 성장하고 좋은 기업이 되겠다는 초심을 유지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기업이 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은 인생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저와 참 많이 닮았고 그래서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던 할아버지가 87세에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20세기의 대표적인 미래 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의 책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서당을 나오신 분이 토인비는 어떻게 아시나 싶어 놀랍기도 하고 끝없이 배움을 추구하신다는 측면에서 존경스러웠습니다. 좋은 것과 훌륭한 것을 계속 배우고 또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이 아닐까요.”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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