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총리는 20일(현지시간)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여기고 있다면서 “독일에서 보호와 난민 지위를 신청했던 사람이 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날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터진 트럭 테러가 난민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면서, 자신이 주도한 포용적 난민정책의 결과에 대한 비통함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독일에서는 지난 7월에도 아프가니스탄·이란·시리아계 난민·이민자들에 의한 테러가 연쇄적으로 터져 난민 정책에 대한 회의론에 불을 붙인 바 있다.
테러가 터지자 독일 사회는 곧바로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과 난민정책 선회 요구로 들끓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물론 연정파트너인 기독사회당(CU)마저 메르켈 총리를 향한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4일 “연간 난민 유입을 20만 명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차기 연정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나온 호르스트 제호퍼 바이에른주 CU 대표는 이날도 “우리는 희생자들에게, 모든 국민에게 우리의 이민과 보안정책을 재고하고 변경할 빚이 있다”며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더욱이 유럽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추가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다.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 검찰은 이날 테러 용의자로 체포했던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나베드 B를 증거불충분으로 석방하고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진범이 아직 검거되지 않았으며, 언제든 다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내년 9월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 트럭 테러를 계기로 난민상한제 수용 등 난민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할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9월 베를린·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뒤 지난 5일 부르카(이슬람 여성의 전신을 가리는 복장) 법적 금지 방침을 밝히는 등 이미 변화의 조짐을 비치고 있다.
만약 서방 자유주의 최후의 보루인 메르켈 총리마저 반(反) 이민 정서에 굴복할 경우 유럽의 난민정책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 내년 네덜란드·이탈리아·독일 총선과 프랑스 대선 등에서 극우 정당이 세를 불린다면 유럽은 인도주의를 포기하고 국경 걸어잠그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편 테러 발생 하루가 지나면서 전날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날 성명을 통해 “IS의 한 전사가 독일 베를린에서 작전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자신들이 테러의 배후라고 자처했다.
또 범행에 사용된 트럭은 16일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들어왔으며, 17~19일 크리스마스 시장 인근에 주차돼 있었다는 이탈리아·독일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원래 주인은 범인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