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금융투자협회 고시금리를 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110%에 마감했다. 전날 2.558%에 마감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보다 44.7bp(1bp=0.01%포인트) 낮다. 미국의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6월부터 꾸준히 동일한 만기의 한국 국고채 금리를 앞지르고 있으며 금리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금리 역전 현상이 5년물까지 전염됐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현금인출기(ATM)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돈을 빼 미국으로 유턴하는 자금 수요의 압박이 거세진다는 의미다. 5년물 금리는 이날 1.832%에 마감했다. 동일 만기 미국 국채보다 약 20.6bp 낮다. 5년물 금리 역전은 연준의 금리 인상과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 소식이 전해지기 하루 전인 13일부터 시작됐다. 채권시장에 이례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지만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이탈할 조짐은 없었다. 시장금리인 3년물은 여전히 한국 금리가 높지만 그 차이는 지난달 말 31.8bp에서 21일 12.7bp까지 좁아졌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채권금리가 역전된 것은 우선 양국의 통화정책 방향성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점도표상 기준금리 3회 인상을 전망한 게 실현되고 한국은행은 동결하면 기준금리도 역전되는 상황이라 시장금리의 역전 현상은 앞으로도 불가피해 보인다는 평가다. 한은은 국내 경기전망이 좋지 않아 내년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001200) 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번만 더 올려도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미 국고채 1년물 금리가 외국인들의 자금조달 금리인 리보(LIBOR)보다 낮아 외국인의 원화 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은 다소 훼손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서 집계하는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잔액을 보면 19일 현재 89조2,244억원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기 직전인 13일 88조9,430억원으로 연중 최저였으나 이후 되레 늘었다. 원화 채권 비중이 많은 템플턴펀드가 올해 들어 꾸준히 비중을 줄였지만 그 외 외국인의 뚜렷한 이탈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 역시 금리 역전과 달러 강세가 잠재적 불안요소임은 맞지만 당장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국 금리는 미국보다 낮을 뿐 독일·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 금리보다 여전히 높아 세계 금융시장에서 여전히 매력이 있다”며 “지금 역전됐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국내 금리가 오르면서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할 때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더 많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국인의 채권투자에 가장 큰 변수인 달러화 가치가 계속 강세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흐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강승원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각종 불확실성이 사라져도 통화가치의 변동성은 하나의 위험요소”라며 “강달러 기조에 엔·달러 환율이 120엔 이상 오르면 국내 채권시장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직 시장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잠재적 리스크”라고 말했다.
/박준호·김상훈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