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소비 특수가 완전히 실종됐다. 크리스마스가 있어 통상 기준선인 100을 넘는 12월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0대 초중반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 여파로 덩달아 오른 시중금리, 유가 상승과 여기에 시행 3개월을 맞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등 4대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소비위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민간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CSI는 94.2로 전월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100을 밑돌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4월(94.2) 이후 7년 8개월 만에 최저다. 세부적으로 소비지출전망 CSI가 103으로 3포인트 내리며 2009년 4월(100) 이후 가장 낮았다. 경기판단 CSI 역시 55로 5포인트 하락하며 기준선에 훨씬 못 미쳤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매출은 11월 1.5%, 12월(21일까지) 1.3% 감소(전년 대비)했고 롯데백화점도 각각 0.5%, 0.7% 줄었다.
이날 하나금융투자는 12월 백화점 업체의 매출이 2% 역성장하고 대형마트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점쳤다. 증권가에서 본 유통업체의 4·4분기 예상 실적도 점점 하향 조정되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4인 가족이 국내 여행을 간다면 적어도 100만원 이상을 쓰며 내수에 기여할텐데 촛불집회에 참가하며 광화문 등 일부 상권만 들썩이고 전체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것도 부진의 주된 요인이다. 전 세계 금리 상승세로 우리나라 대출 금리도 오르고 있고 이는 변동금리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으로 연결되는 실정이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50달러선으로 올라서며 10월1일 리터당 1,519원이던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26일 현재 1,579원으로 4%가량 올랐다.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은 한우·화훼농가의 주름도 깊어지고 있다. 보통 한우 도축 마릿수가 줄면 가격이 올라 적정한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도축 마릿수도 줄고 수요가 줄어 가격도 떨어지는 이중고에 처했다. 23일 현재 한우 도매가격은 1㎏당 1만4,663원으로 6월에 비해 19% 감소했고 수송아지 가격도 296만8,000원을 기록해 같은 기간 26% 하락하며 300만원선이 무너졌다. 강원도 춘천의 한 농가 주인은 “사료 값에 백신 값까지 더하면 남는 게 없어서 추가로 송아지 입식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훼농가 역시 연말 각 기관의 인사 시즌이라는 대목을 맞았지만 난(蘭) 거래량이 11월과 12월 각각 37.1%, 33.6%(전년 대비) 급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심리 위축, 고용시장 악화 등 경기 요인과 가계부채 원리금 부담 및 주거비 부담 증가 등 구조적 요인이 겹쳐 내년 민간소비 증감률이 1%대로 둔화(1.8%)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2014년(1.7%)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다. /세종=박홍용·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