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자 늘리는 3D 프린팅 기술, 어디까지 왔나] 세포부터 집까지 층층이 인쇄해 만든다

빛 받으면 굳는 액체 플라스틱 등
얇은 층으로 쌓아 입체형상 제작
기술특허 만료돼 후속 개발 봇물
韓기술력, 선도국에 2~3년 뒤져
프린터기·소재·SW 국산화 절실

3D프린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헐 3D시스템즈 창업자 /사진제공=3D시스템즈


1980년대초 미국 캘리포니아의 ‘UVP’의 기술담당 임원인 찰스 헐(Charls W. Hull)은 고민에 빠졌다. 자외선을 활용한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시제품 제작에 수개월씩 걸리곤 했던 것이다. 문득 뇌리에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고분자화합물인 광중합체(photopolymer)로 만든 매우 얇은 플라스틱막을 탑 쌓듯 수백~수천 층씩 쌓으면서 자외선빔 등의 레이저를 쪼여 원하는 입체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광중합체는 빛을 받으면 액체 상태에서 고체상태로 변한다. 헐은 첫 착안후 1년여의 씨름 끝에 1983년 완성된 기기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3차원(3D)프린터가 탄생한 순간이다.


지난 27일 정부는 ‘3D프린팅산업 진흥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투자 확대를 다짐했다. 헐이 1984년 3D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2년 뒤부터 세계 최초로 3D프린팅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했는데 해당 기술의 주요 특허권들이 지난 2012년부터 순차적으로 만료됐다. 특허가 풀려 누구나 해당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의 많은 기업과 개인들이 3D프린팅산업 제품과 후속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대열에 2~3년 가량 뒤져 있다.

현재 3D프린팅 기술의 기본은 적층방식이다. 이는 헐이 착안했듯 기본소재를 바닥면에서부터 얇은 층으로 겹겹이 쌓아 올리는 것이다. 다만 0.1mm미만의 얇은 층을 수천~수만번씩 인쇄해 쌓는 방식이어서 상대적으로 완성품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보통 높이 10cm미만의 피규어(일종의 인형)를 제작하려면 길게는 8시간 가량. 짧게는 2~3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대량으로 제품을 만드는 업종에 당장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완성제품 표면의 마감처리 품질이 떨어지고 내구도, 내화성, 내부식성과 같은 물리적 특성이 미흡하다.

미국계 자동차제조사 ‘로컬모터스(LM)’이 3D프린터를 이용해 바닥부터 위로 자동차를 인쇄해 쌓듯 찍어내는 모습(위)과 완성된 자동차 모습(아래)/사진제공=LM
3D프린팅의 기술경쟁력은 단순히 프린터 기기만으론 확보될 수 없다. 재료소재와 소프트웨어까지 겸비해야 한다. 우선 재료소재 기술의 국산화가 동반돼야 한다. 해외 3D프린터제조사들은 자사의 프린터에 자사가 공급하는 소재만을 재료로 쓰도록 기술 제한을 걸어 시장진입 장벽을 치고 있다. 주요 재료소재로는 액체 플라스틱이나 분말형태의 금속가루, 세라믹, 실리콘 등이 애용된다. 전기영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수석연구원은 “3D프린팅용 재료로 특히 티타늄이 각광 받고 있는데 국내에선 시장이 작아 적극 나서지 못한 상황이지만 반드시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 기술력 확보도 절실하다. 이규복 전자부품연구원 박사는 “재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해 제조원가를 낮추면서도 높은 내구성, 품질의 완성품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3D프린터에 겸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골수암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해 3D프린터로 찍어낸 인공골반뼈(빨간색 동그라미 표시)의 모습. /사진제공=연세대 세브란스병원
3D프린팅 기술은 제조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근래에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의료·제약, 건축, 항공 및 자동차부품 등이다. 특히 의료 분야에선 임플란트와 같은 치과용 보형물은 물론이고 인공 뼈, 인공 피부 등 보형물 개발이 국내에서 활발해 외과수술의 혁명을 예고 중이다. 최근에는 아예 생물의 세포조직 자체를 찍어내는 수준에 이르러 제한적이나마 인체 장기 등의 출력도 가능하게 됐다. 주택의 경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로 3D프린터를 활용한 레고블록식 주택 건축이 지난 2014년 시도됐으며 이후 중국 등에서 관련 기술의 상용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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