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인 탤런트 김수현이 베이징현대차의 광고 모델로 낯선 땅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반겼다. 1년이 지난 최근 서우두 공항에서 본 북경현대차의 광고 모델은 중국 배우 후거로 바뀌었다. 세계 어느 공항을 가도 보이던 삼성 광고판도 아예 자취를 감췄다.
홍콩 완차이 호텔에서 1시간 거리인 선전 푸톈의 호텔에서는 한국 방송을 볼 수가 없다. 채널 3개만 돌려도 더빙돼 나오던 한국 드라마가 모두 사라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금한령’ ‘한한령’의 실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금한령을 민간 영역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친분을 가진 중국 상무부의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선양 롯데타운 허가 등을 언급하며 한중 경제 교류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중국에서 흔히 듣지 못했던 ‘국민감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이 중국인의 국민감정을 먼저 건드렸다”는 그의 말이 중국 정부의 속내를 잘 설명했다.
사드 이후 불어닥친 금한령은 감정 문제일까. 아니다. 중국 외교정책의 최우선순위인 ‘국가 핵심 이익’이 반영된 결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3년 ‘주변국 외교공작회의’에서 “친밀(親密)·성실(誠實)·혜택(惠澤)·포용(包容)의 주변국 외교 이념에 따라 주변 국가가 우리를 더 우호적이고 친근하게 대하며 더 지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 가지 원칙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이 바로 ‘국가 핵심 이익’이다. 7월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창립 95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핵심 이익’을 놓고 거래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며 강도 높은 경고를 보냈다. 결국 중국을 둘러싼 남중국해, 양안 문제, 사드까지 중국의 이익이 침해될 경우에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경고다. 24일 중국 항공모함인 랴오닝은 서해를 지나 서태평양까지 진출하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변화에 대응했다.
한중 관계를 스모그 속으로 끌어들인 사드 문제는 내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사드가 태어났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사드 철회 주장까지 나온다. 사드 배치 결정이 박근혜 정부의 성급한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한미 양국의 외교적 약속이고 결정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진보 진영에서는 사드 배치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싶겠지만 한미 관계는 물론 국제 관계에서 이런 행태는 없다. 차라리 한일 관계를 푸는 데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사드를 이용하자는 한 대권후보의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드를 철회한다고 중국의 입장이 변할까도 의심스럽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당의 핵심 이익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주권과 영토 보전, 중국식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요약된다. 사드는 좁게 보면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이라는 핵심 이익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 문화, 특히 한류 등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드릴 수도 있는 위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대륙의 쪼잔한 대응에 흔들리지 말자. 일희일비보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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