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국회, 구본무 회장 질문에 답할 차례

서정명 산업부 차장

지독한 홍역이었다. 몸살은 아직도 뼈마디에 스며들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비리와 부조리가 득시글거렸다. 암실(暗室)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정경유착 치부에 ‘촛불’을 들이댔더니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자화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고 권력 청와대는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연결고리로 대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반강제적으로 거둬들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문화융성과 스포츠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협조를 당부하자 대기업들은 관행대로 재계 순위에 따라 납부금액을 할당했다. 청와대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일선에서 물러나라며 퇴진 압력을 넣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재단 뒤에는 ‘검은 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가 재단 요직에 자신의 사람을 앉혀 떡 주무르듯 재단을 요리했다.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처럼 교묘하게 이권을 챙겼다.

대기업은 수레바퀴 앞에 놓인 사마귀처럼 정치권력에 무기력했다. 삼성그룹은 최씨 측에 뭉텅이 자금을 건넸고 SK그룹과 롯데그룹도 최씨 측에 돈을 건넸다가 돌려받았다. 현대차그룹은 차은택씨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 일감을 몰아주고 최씨와 친분이 있는 KD코퍼레이션에 납품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둔했던 청와대와 교활했던 최씨가 연출한 ‘막장 드라마’에 기업들이 줄줄이 얽혀 들어갔다.


역사는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반드시 교훈을 준다. 탄핵을 당한 박 대통령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권력을 잡는다.

공익 목적을 위한 재단이나 단체를 설립하고 대기업 출연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미소금융재단), 노무현 대통령(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 김대중 대통령(대북 비료사업), 전두환 대통령(일해재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헛구호만 외치지 말고 입법을 통해 실천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영란법처럼 처음 제안한 의원의 이름을 딴 법안을 만들어도 좋다. 내용은 ‘정경유착 금지법’이다.

청와대·국회의원 등 정치권력이 기업에 자금 출연을 강제하거나 부탁할 때에는 처벌해야 한다. 부당한 요청을 받아들인 기업인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력이 기업에 인사청탁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은 기업을 활용해 사익(私益)을 챙기려는 강한 유혹을 받기 쉽다. 최순실 사태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좋은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대한민국이 한발 더 앞으로 전진한다. 국회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대기업 총수들을 윽박질렀던 어떠한 국회의원도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달 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앞으로도 정부에서 돈을 내라고 하면 이런 자리에 나올 것인가”라고 묻자 “국회가 입법을 해 막아달라”고 말했다. 하 의원을 비롯한 300명의 국회의원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차례다.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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