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싱크탱크에 듣는다] 김준경 KDI 원장 "저성장 탈출하려면 좀비기업 정리부터"

<1>연구원장 릴레이 기고-김준경 KDI 원장
산업구조조정 성패는 실업대책에 달려
실업급여·직업훈련 등 안전망 확충해야

김준경 KDI 원장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과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소비와 투자심리마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이 불확실한 가운데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의 금융불안 등이 세계 경제, 특히 중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은 최근 2년간 자본이 해외로 급속히 유출되면서 위안화 환율 절하 및 외환보유액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높은 중국 의존도를 고려할 때 향후 중국의 경제불안 심화는 우리 수출과 성장에 커다란 리스크로 작용할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제조업의 고용은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의 경우 정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제조업 취업자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위기 이후 크게 늘어나고 생산성이 하락했다. 글로벌 위기 이후 정부가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않고 정책금융 지원으로 연명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구제정책이 지속되면서 대기업들이 요행을 바라며 ‘앞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큰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이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설비와 고용을 늘리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조선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용이 2009~2013년 10만명 이상, 특히 하청업체의 저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증가했다가 최근에야 일부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체는 2014년 이후 매출액 증가율이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전례 없이 영업력이 크게 훼손된 상황이다. 그 결과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에도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의 비중이 조선, 해운, 건설, 전기·전자, 철강산업 등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실이 깊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는 채권단의 채무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부실기업의 경영권 개편을 통한 사업 재편과 중장기적 산업 고도화를 위한 자원 재배치가 동반돼야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책임주의와 비용최소화 원칙에 입각해 부실 조선사에 대한 정확한 실사와 향후 중장기 전망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 경쟁력이 상실된 부문의 과감한 축소와 함께 손실은 기업의 주주·경영자·근로자·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부실을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R&D) 등 기술경쟁력 강화를 통한 조선업의 고부가가치화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규제개혁 통한 신사업 창출…‘창조적 파괴’ 필요한 시점



이러한 산업 구조조정의 성패는 실업대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조과정에서 탈락하는 인력의 재배치를 위해 실업급여와 직업훈련 등 사회안전망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한국 실업급여는 선진국에 비해 적용 대상 범위가 좁고 보장수준도 낮아 실직자들에 대한 소득보조 역할이 제한적이다. 또 전체 임금근로자의 63%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 여전히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실직 이전 임금 대비 실업급여액의 비율로 측정되는 실업급여의 임금 대체율은 약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63%보다 낮다. 실업급여 최대 지급기간의 평균은 약 7개월로 OECD 국가 평균인 15개월의 절반 수준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실업대책은 효과적인 직업훈련으로 실업자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인적자원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업자들의 연령과 기술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훈련 강사의 자질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실산업 등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묶여 있는 노동과 자본을 원활하게 재배치하기 위해서는 진입규제 완화 등 규제개혁이 추진돼야 한다. 우리 경제가 정보기술(IT)과 기존 산업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규제개혁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에서 협치를 통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계류 중인 규제 관련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과 규제개혁은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는 데 필수요소다. 1980년대 초 유사한 시기에 금융위기가 발생한 멕시코와 칠레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구조조정과 규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칠레는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성장률이 이른 시일 내에 복원됐다. 반면 부실 문제 해소에 소극적이었던 멕시코는 경제 전체의 생산성 저하가 초래되면서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좀비기업에 대한 은행의 관용적 대출이었다. 좀비기업이 증가할수록 다른 건강한 기업의 고용과 투자활동은 감소하고 일본 경제 전체의 평균 생산성도 감소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기업 데이터를 이용한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서도 부실기업 정리가 지연되면 고용과 투자 감소가 초래된 것으로 분석됐다. 요제프 슘페터가 설파한 ‘창조적 파괴’를 재음미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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