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코리아' 부활 이끌 두기업] 소난골 드릴십 옆 쇄빙 LNG선 건조 한창..."위기속 희망 움튼다"

<하>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유동성 위기 주범' 드릴십 수개월째 정박돼 있지만
세계 첫 '첨단 쇄빙선'은 다섯척째 건조 작업 구슬땀
일반 LNG선의 1.5배 고부가 선박..."부활 밑거름 기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D안벽에 드릴십(이동식 시추선) 4기가 정박해 있는 모습.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검정색 선체의 선박이 소난골 드릴십이고 그 왼편이 최근 인도 연기 요청이 접수된 애트우드 드릴십이다.
러시아 국영 선사인 소브콤플로트가 발주해 북극해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야말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인 세계 최초의 쇄빙 LNG선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5번 플로팅 도크에서 건조되고 있다. /거제=한재영기자
세밑 기습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달 27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9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은 초대형유조선(VLCC) 블록을 가뿐히 들어올려 도크(dock·선박 건조대)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도크 옆 절단 작업장에서는 고온의 레이저가 선박 건조에 쓰이는 철판(후판)을 가위로 종이 자르듯 어렵지 않게 잘라냈다. 정교하게 잘린 철판은 용접 작업을 거쳐 레고 조립하듯 또 다른 선박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기자가 찾은 옥포조선소는 얼핏 봐서는 최악의 수주 가뭄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을 만큼 역동적으로 돌아갔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460만㎡ 면적의 조선소에서 동시에 40여척의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곳곳에는 위기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목격됐다. 조선소 중앙 D안벽(岸壁·마무리 건조 작업을 위해 선박을 댈 수 있는 부두)에는 익숙한 이름의 이동식 시추선(드릴십) 2기가 수개월째 정박해 있다.

하나는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인 소난골이 당초 인도 시점에서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 인도해가지 못하고 있는 드릴십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발주처로부터 두 번째 인도 연기 통보를 받은 미국 시추업체 애트우드오셔닉사(社)의 드릴십이다.

소난골 드릴십은 건조가 완료된 상태고 애트우드 드릴십은 한 차례 인도가 연기된 오는 9월 발주처에 넘길 예정이었지만 인도 연기 요청으로 마무리 공정이 의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저유가 영향으로 발주처가 인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탓에 이들 설비는 언제 옥포만(灣)을 떠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특히 헤비테일(대금의 절반 이상을 인도 시점에 지급하는 방식의 계약) 형태로 수주계약을 맺은 소난골 프로젝트는 지금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위기의 핵심이다.


“건조가 끝난 소난골 드릴십은 다른 선박 건조에 방해가 안 되도록 그때그때 옮겨다닙니다.”

‘수주 잭팟’에서 이제는 다른 선박 건조에 방해가 안 되게 여기저기 옮겨둬야 하는 애물단지 처지가 된 소난골 프로젝트. 1조원가량의 유동성 확보가 달려 있는 이 프로젝트 인도가 성사되지 못하면 대우조선해양의 유동성 위기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최악의 수주환경으로 안 그래도 신규자금 유입이 꽉 막혀 있는데 기존에 수주해놓은 조(兆) 단위의 해양 플랜트까지 인도되지 않고 있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간다.

이런 와중에 대우조선해양은 대규모 손실이 누적되면서 지난해 3·4분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영구채 매입 덕에 지난해 말 가까스로 자본잠식을 해소하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 헐값에 팔리거나 채권단을 상대로 한 빚잔치를 벌일 뻔했다. 2000년부터 이미 7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혈세를 머금은 위기의 대우조선해양에 국책은행이 또다시 세금을 쏟아부은 이유는 명료하다.

대우조선해양의 생사가 단순히 이 회사만의 운명이 아니라 올해 우리 제조업, 나아가 전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1위 경쟁력은 유지해야 한다. 세계 1위 산업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희망은 위기의 상징인 소난골 드릴십 바로 옆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소난골 드릴십 2기 중 1기는 5번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해상 선박 건조대) 왼쪽 바깥벽에 붙어 외롭게 떠 있었지만 도크 안쪽에서는 세계 최초의 쇄빙 액화천연가스(LNG)선 건조가 한창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러시아 국영 선사인 소브콤플로트 등으로부터 쇄빙 LNG선 15척을 척당 3억2,000만달러에 일괄수주했는데 이미 한 척은 건조가 마무리됐다. 이 쇄빙 LNG선은 지난달 극한의 운항 테스트를 위해 북극해로 떠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쇄빙 LNG선은 안벽에서 마무리 작업 중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쇄빙 LNG선은 3번과 5번 플로팅 도크에서 건조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2.1m 두께의 얼음을 깰 수 있는 쇄빙선은 상선과 달리 선박 가장 앞쪽과 뒤쪽의 철판 두께가 15㎝나 되고 가격도 일반 LNG선보다 1.5배 비싼 고부가 선박”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북극해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대우조선해양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쇄빙 LNG선이 건조되는 플로팅 도크로 향하는 A안벽 오른쪽에는 1만9,63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이 발주처인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 머스크 특유의 하늘색 옷을 갖춰 입고 의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거제=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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