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실업과 재정악화 등 핀란드의 ‘복지병’을 해소할 방법으로 고안됐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 보장이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고 재정지출을 키울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핀란드 정부는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줄 경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부러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핀란드인들은 실업 후 재교육 기간에 하루 최대 18유로까지 제공되는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용직 일자리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핀란드 실업률은 지난 2013년 7월 이후 7%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캉가스 연구실장은 “기본소득 실험은 사람들이 무언가(실업수당)를 잃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어도 기본소득이 계속 지급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제 성공 여부를 판단할 기준으로 실업률을 꼽는다.
핀란드 정부는 또 기본소득 도입으로 각종 명목에 따라 분리된 복지체계가 일원화되면 장기적으로 재정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복지비용이 기본소득제 전면도입으로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기본소득제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기존의 분배·복지체계를 바꿀 대안으로 주목되기도 한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지는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지난 2000년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임금 인상률이 정체돼 있다며 AI 등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본소득 논쟁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본소득제는 핀란드 등 높은 복지수준을 제공하는 국가 외에서도 도입 논란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6월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영국에서는 제1야당인 노동당과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기본소득제를 주요 정책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캐나다·네덜란드·아이슬란드·우간다·브라질 등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기본소득제는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데다 일부 복지 선진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운 급진적 정책으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별 복지 지출을 기준으로 기본소득 예상액을 산출한 결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지급할 수 있는 나라는 38개국 중 유럽 7개국에 불과했다. 복지체계가 취약한 아시아·남미 국가들의 경우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이 형편없이 낮아 기본소득제 도입은커녕 복지재원 확대가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