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마이더스(SM)그룹이 대한해운을 내세워 한진해운 미주·아시아 노선 자산을 인수하려던 계획이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한 대한해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SM그룹은 대한해운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지분을 출자해 만든 SM상선이라는 신설법인을 통해 인수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대한해운 주주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해운은 3일 서울 마곡동 SM연구개발(R&D)센터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한진해운 미주 노선 자산을 인수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참석 주식 수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되는 조건인데 찬성률이 출석 주식 수의 1.8%에 불과했다.
대한해운 측은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 외국인 주주 등 주요 주주들이 대한해운이 계약 주체로 나서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부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SM상선이 주도적으로 계약을 체결해 서비스 준비를 진행하고 대한해운은 일부 지분을 투자해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주총에서 안건이 부결된 것은 부(不)정기선인 벌크선 중심의 사업을 해온 대한해운이 영업 등 사업방식이 완전히 다른 정기선 사업인 컨테이너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주주들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머스크 등 글로벌 공룡선사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으로 운임이 바닥으로 떨어져 한진해운 같은 대형 컨테이너선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대한해운이 컨테이너 사업에 신규 진출하는 것이 주주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주총에서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한진해운 자산인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대한해운은 5일 전체 인수대금 275억4,600만원 가운데 계약금 37억원을 제외한 238억4,600만원을 납입해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이는 법원과 합의했던 370억원에서 100억원 가까이 낮아진 금액으로 중국 등 해외 자회사에서 우발채무가 발생하며 인수 대상이 대폭 축소된 데 따른 것이다. 인수 대상에는 원래 해외 자회사 7곳이 포함돼 있었지만 대한해운은 홍콩법인만 인수하기로 했다.
대한해운 측은 “잔금 납입 일정을 법원과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절차 등을 고려하면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SM그룹이 주주의 반대에 직면한 대한해운이 아니라 주주 구성이 계열사들로만 이뤄진 SM상선을 통해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하려는 것을 두고 주주들의 우려를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SM상선은 대한해운이 지분 20%를 출자한 것을 비롯해 계열사들이 지분을 투자해 지난해 말 설립 등기를 마쳤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SM그룹이 치킨게임의 와중에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측면에서 얼라이언스(해운동맹) 가입과 화주(貨主)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