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설맞이 명절선물상품전’에서 행사 관계자들이 ‘영란 선물 특별관’에 5만원 이하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행 100일째를 맞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설 명절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5만원 이하 선물만 허용하다 보니 국내산은 밀려나고 값싼 수입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명절 대목이 사라지면서 농·축·수산 생산업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들은 5만원 이하로 값을 낮춘 수입산 농·축·수산물을 오는 9일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한다. 그동안 백화점들은 소고기에서 돼지고기로 품목을 바꾸거나 포장 단위를 줄여 가격을 낮췄지만 선물세트 판매 대목을 맞아 아예 수입산으로만 채운 선물세트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호주산 소고기로 구성한 4만9,000원짜리 선물세트를 처음 내놓았다. 그 밖에 페루산 애플망고, 인도산 자연산 새우(모두 5만원·신세계)도 등장했다. 뉴질랜드산 순살갈치(7만원), 러시아산 명란 세트(5만5,000원·모두 신세계) 등 5만원은 갓 넘겼지만 백화점 선물세트치고는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 선물세트도 팔리고 있다. 그나마 남은 국내산 선물도 영광굴비(5만원·현대) 이하 가격에 맞추기 위해 포장단위를 줄였다. 롯데백화점은 5만원 미만 선물 품목 수를 지난해보다 60% 늘리고 5만원 미만 선물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비싸더라도 명절에는 국내산을 선물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줄어드는 상태에서 청탁금지법이 결정타를 날렸다고 진단한다.
신세계백화점이 최근 3년간 설 신선식품(정육ㆍ수산ㆍ청과 등) 매출을 분석한 결과 국내산 명절선물의 매출 신장률은 2015년 7.3%, 2016년 8.1%로 증가하다 올해는 4.5%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수입산의 경우 2015년 24.5%, 2016년 66.6%로 크게 올랐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3배 뛸 것으로 예측했다.
청탁금지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청탁금지법으로 타격을 받은 관련 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설 명절 전에 대대적인 판매 촉진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할인 행사 외에 뚜렷한 대안은 없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가격을 따지지 않는 선물 시장에서도 국내산 농·축·수산품이 외면 받는 상황인데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는 실수요자들이 국내산을 얼마나 사겠나”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는 한시적으로라도 식사3만원·선물5만원·경조사비10만원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지만 권익위는 규제를 정할 때 2018년까지 지켜보기로 했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