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글로벌경제를 말한다] 해리스 "세계 경제 '체제 전환기'...냉·온탕 오가며 변동성 커질 가능성"

■ 이선 해리스 BoA메릴린치 글로벌리서치 대표
美·日 인플레이션 본격화 속 트럼프호 출범이 최대 리스크
재정확대·보호무역 정책 충돌...경기과열·긴축 혼란 부를 수도
韓, 권력투쟁·북핵위협 겹쳐 경제 불확실성 더 커졌지만
설비투자 회복·수출 늘어나며 성장률은 2.9%로 개선 예상
日 부양책 효과로 성장 재점화...伊 생존위기 등 유로존은 악화

이선 해리스 /사진=블룸버그


“세계 경제가 올해도 불확실성이 큰데 한국은 여기에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권력투쟁과 북핵·미사일 문제가 더해져 위험요인이 훨씬 가중된 상황입니다.”

이선 해리스(사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글로벌리서치 대표는 3일(현지시간)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새해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위험을 이같이 진단했다. 30여년간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 뉴욕에서 활약하며 이미 당대 최고의 경제예측 전문가로 위상을 굳힌 해리스 대표는 “설비투자와 수출 확대에 대한 기대로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소폭 개선될 수 있다”며 “대선을 통해 정치·경제 개혁의 희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리스 대표는 올해 세계 경제의 화두로 ‘체제 전환(regime shift)’을 제시하며 “신흥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정치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이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시장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트럼프의 양대 경제정책인 재정 확대와 보호무역 강화가 미국의 물가 상승 및 금리 인상 흐름과 충돌해 미 경제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리스 대표는 올해 일반적 예상을 넘어서 일본 경제가 성장의 불꽃을 재점화하며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한 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지난해보다 성장률이 후퇴하고 이탈리아 경제는 생존의 문제에 부딪힐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세계 경제는 연초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에 이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등 여러 불확실성으로 흔들렸다. 성장률도 예상보다 좋지 않았는데 올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보는지.

△새해 세계 경제는 체제 전환을 맞을 것이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소폭 오를 것으로 관측되지만 무엇보다 총수요가 총공급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근원물가가 적정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다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주목받을 것이다. 다만 물가 상승률이 미국은 약 2%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에 근접하고 일본은 1%가 살짝 넘는 정도로 예상된다.

-체제 전환은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변화도 포괄해 얘기하는 것인가.

△물론이다.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됐다. 트럼프노믹스의 위험은 크게 두 가지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부양책과 보호주의 강화 및 반(反)이민 등 포퓰리즘적 정책이다. 완전고용에 이른 미국 경제에 재정 확대를 통한 부양책은 경기를 과열시키고 연준의 빠른 긴축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러면 경제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무역과 이민, 연준에 대해 공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하려고 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은 성장동력과 경제심리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는 부양책과 포퓰리즘 정책이 적당히 조합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지만 구체적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위험요인으로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부채 증가, 유럽의 정치 지형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 중동 리스크 등 위험요소들이 순환하며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어쨌든 올해 세계 경제에서 ‘태풍의 눈’인데 미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미 경제의 흐름이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에서 인프라 투자 확대 등 재정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거의 사라져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목표치인 2%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 정부의 부양책이나 보호무역 강화, 반이민 정책은 모두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강(强)달러가 그나마 인플레이션을 일부 상쇄하겠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인상 압박이 커질 것이다.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는 것이 미 경제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점이다.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미 연준에서 장기간 근무해 월가의 어떤 경제분석가보다 연준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준이 지난해 12월 금리를 인상하면서 올해는 세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BOA는 한 번만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더 커진 불확실성 때문이다. 연초에 연준은 미 경제에 조심스런 입장으로 접근할 것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도 일부 교체돼 올해 비둘기 성향이 좀 더 강해진다. 특히 높아진 불확실성이 긴축적인 금융시장 상황과 결합해 변동성과 리스크를 키울 수 있어 결국 연준이 하반기에나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본다. 올해 미 경제는 잘나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반반이니 우리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웃음). 다만 내년에는 연준이 앞서 전망한 대로 3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에 대해 묻고 싶다. 한국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이 경제에 실질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는가.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있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탄핵에 직면한 정치 상황과 지정학적 위험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으로 권력투쟁이 가열되면서 국정에 관련된 주요 업무들이 멈추거나 동결될 수 있다. 북한 핵 개발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위험은 올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한국 경제가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나.

△불확실성이 매우 크지만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은 재정 측면에서 부양책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올해도 완만한 경제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다만 회복은 산업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7% 정도로 예상하는데 올해는 2.9%로 소폭 회복될 수도 있다고 본다. 가계부채가 많고 증가속도 역시 빨라 정부가 금융억제 조치를 취했지만 부동산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저조했던 설비투자는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안정적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미국과 신흥국 시장의 경기가 좋아지면서 수출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올해 대선이 한국 정치와 경제개혁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도 최근 물가 상승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경기회복을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국도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올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에 이를 것이다. 미국이 지난해 12월에 금리를 올렸지만 한은은 당분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경상수지 흑자와 넉넉한 외환보유액은 미 금리 인상이 가져올 충격의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부양책에 불을 붙이면 금리 인상이 빨라질 수 있는 위험이 있고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한은이 올해 계속 금리를 동결하다 4·4분기 정도에 금리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세계 경제가 올해 변곡점을 맞는 데 있어 일본의 변화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일본 경제가 20년 넘는 침체에서 탈출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하나.

△좋은 포인트다. 일본 경제가 재점화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다른 여러 기관들보다 일본 경제에 대해 낙관적이다. 상당수 경제예측 기관들이 일본의 올해 성장률과 물가 상승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실시한 일본 정부의 부양책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고 재정정책이 더욱 확장적으로 이뤄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마이너스에서 올해는 1%대 초반까지 올라설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주식회사 일본’이 다시 움직이면서 국내 수요가 돌아오고 있다. 임금과 고용 증가세가 견조하고 소비자신뢰지수 역시 개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십년간 움츠러들어 있던 자본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다.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률이 6.5% 밑으로 하락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로 금융안정을 위해 성장률에 목매지 않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는가.

△경제가 경착륙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중국 당국은 당분간 부양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이미 정책적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이제 투자에서 소비형 경제로 전환하는 과도기를 잘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차기 지도부를 결정하게 될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오는 11월에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6.5% 밑으로 떨어는 것을 현 지도부가 용인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등으로 미중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BOA의 예상대로 지난해 12월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ECB의 돈 풀기가 지속되고 있는데 올해 유로존 경기는 회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로존 경제는 올해가 지난해보다 더 나쁠 것이다. 물가 상승도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상황이어서 ECB의 양적완화가 연장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존의 재정긴축이 최근 완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올 들어 재정 확대로까지 나아갈 형편도 못 된다. 무엇보다 유로존 일부 국가는 또다시 생존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이탈리아는 향후 2년간 요주의 대상국으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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