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이호재기자
한국의 수출과 성장을 주도하는 주력산업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으로 주요 산업 대부분이 과잉 공급되는 가운데 신과학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제·사회 각 부문에서 선제적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첫째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로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가 형성되면서 기존의 생산·유통·금융 방식 등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가생산이 가능한 3D프린팅, 우버처럼 갈수록 다양화되는 전자상거래 기반 서비스, 새로운 금융회사 핀테크 등이 대표적 사례다. 두 번째는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 같은 신기술이 기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사업과 산업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 산업처럼 기존에 통용돼온 업의 장벽들은 점차 붕괴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동력원을 전기로 바꾸고 무인자동운전 시스템이 장착되면 자동차는 이제 더 이상 제조업이 아니라 각종 정보 제공이나 오락장 그리고 작업장 역할까지 하는 정보통신업이나 서비스업으로 변신하게 된다.
기존 산업의 유효성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산업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에 신속하고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는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을 실현해야 한다.
우선 규제개혁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한다. 모든 규제는 각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새로운 경제환경에 맞는 규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화 시기에 전통 제조업이나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인허가 등 시대에 뒤떨어진 불필요한 규제들은 근원적으로 폐지하고 시장 창출을 막는 과잉 규제들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예컨대 AI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신사업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과도한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대상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한발 앞서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국이나 일본 같은 경쟁국들을 결코 앞서나갈 수 없다.
유치원때부터 교육체계 바꿔 자기주도형 창의 인재 길러야
기업들이 스스로 사업구조를 혁신할 수 있도록 상시 사업 구조조정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세계경기 침체와 4차 산업혁명의 급류 속에서 미국의 GE 같은 세계 유수 기업들은 이미 사활을 건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것은 오로지 각 기업의 사업구조 혁신능력이다. 기업은 앞으로 정부 지원자금으로 절대 연명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과감한 사업재편과 사업혁신에 몰두해야 한다. 특히 경영세대가 바뀐 성숙산업 내 대기업들의 살길은 물려받은 전통사업을 지키는 수성이 아니라 새로운 창업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 주도 사업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시장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기업의 사업 부문 간 거래를 손쉽게 추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인수합병(M&A) 시장과 투자금융업을 활성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사전적 사업개편을 돕기 위한 기업활력제고법 적용 대상을 보다 과감히 확대하고 금융·세제 분야에서 보다 큰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일하는 방식을 과감히 바꾸는 노동시장 구조개혁도 시급하다. 각 산업혁명은 그때마다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왔다.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일하는 방식이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산업화 시대처럼 대규모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고정된 장소에서 장시간 많은 인원이 한데 모여 작업을 하기보다는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어 보다 유연한 형태의 작업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에 맞춰 시간선택 근로, 성과 중심 임금 결정, 재택근무 등을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임금과 고용 측면의 노동시장 개혁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서도 여성과 고령자 같은 주어진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산업 시대에 적합한 산업인재를 양성하고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국의 교육과 연구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역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혁신해야 한다. 기존의 대학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체제는 산업화 시대에 정해진 지식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암기하고 이해하는 데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적합했지만 끊임없이 생성되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창의적으로 획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매우 부적합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사라질 지식을 목숨 걸고 배우는 허망한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주어진 문제풀이에 치중하는 수동적이고 모방적인 인재보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체계를 유치원 단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특히 대학교육 체제를 국가 인력수요에 맞춰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개혁해 국내 대학이 신산업과 신사업 창출 및 산업 경쟁력 강화에 첨병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학을 기반으로 산업계와 연구계가 유기적인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해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