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26일 박상진(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사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최순실씨 모녀 소유 회사 코레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고 있다. /사진제공=박영선 의원실
삼성그룹에 대한 특별검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특검과 삼성의 프레임 구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검 측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삼성을 끝까지 ‘뇌물’의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반면 삼성은 최고위층으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공갈과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에 나선 것이라는 프레임을 강하게 들고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수사 막판 프레임 구도를 둘러싼 논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4년 9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한승마협회를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듬해 3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이 2015년 5월26일 발표됐고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승인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25일 이 부회장을 다시 만나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이 왜 늦어지느냐”며 20여분간 역정을 냈다. 이 부회장은 그제서야 임원진에 승마협회 지원을 지시했고 삼성전자는 그해 8월26일 독일에서 승마 선수(정유라) 지원 명목으로 코레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맺었다. 바로 최순실이 소유한 스포츠컨설팅 업체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삼성전자와 코레스포츠 간 계약에 이르는 이야기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삼성과 이 부회장이 연루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찰팀은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승마 지원을 가장해 뇌물을 줬다고 본다. 이에 맞서 삼성은 자신들이 공갈·협박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이 ‘팔을 비트는 바람에’ 최씨와 정씨에 돈을 댔다는 얘기다.
이르면 6일부터 박 사장과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 이어 이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를 차례로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검은 청와대와 삼성·국민연금 간의 ‘3각 커넥션’ 입증에 공을 들여왔다. 삼성이 박 대통령에 대한 최씨의 영향력을 미리 알았고 삼성물산 합병 통과를 위해 최씨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특검의 3각 커넥션은 박 대통령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대주주인 국민연금을 움직여 합병안에 찬성시키면서 완성된다.
특검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긴밀히 공조해 합병 찬성을 유도했다고 보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구속했다. 특검에 따르면 합병 찬성을 주도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내부 투자위원들에게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한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복지부가 청와대에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올린 정황도 포착됐다.
반면 삼성을 포함한 재계는 박 대통령과 최씨의 압박 강도는 공갈·협박 수준에 해당한다며 삼성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반박한다.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하기 하루 전인 2015년 7월24일에는 삼성 출신 승마협회 임원 2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교체를 지시했다. 이 역시 삼성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한 증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며 “삼성은 뇌물을 줬다기보다는 공갈·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을 약속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합병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질책하기 전에 이미 완료됐다는 것도 삼성이 뇌물죄 의혹을 부인하는 근거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여론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정책적 결정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외부 자문기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건 사실이지만 당시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합병 찬성을 권했고 외국 투기세력을 막기 위해 합병안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크지 않았느냐”며 “삼성의 무죄를 추정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검이 삼성을 뇌물죄 혐의로 기소할 만한 증거를 충분히 쌓아둬 실제 법정에서는 삼성의 혐의 입증을 위한 치열한 법리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또 피해자가 공갈 가해자에 금품·특혜를 줬다고 해도 여전히 뇌물죄가 인정된 대법원 판례가 있어 삼성으로선 특검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 전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 합병 후에 삼성이 승마지원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 사후 뇌물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최진녕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특검은 삼성을 뇌물죄로 기소할 구체적 증거가 많지만 승리를 장담할 정도는 아니고 삼성은 기소는 피하지 못하겠지만 무죄를 주장할 논리·근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특검과 삼성 중 어디가 우세한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