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조...판 커지는 신탁시장

현금·증권 등 '만능 바구니'
박스피·공모펀드 위축에도
9개월새 108조 급증 709조
日비교땐 1,000조 추가유입

#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지난 2009년 늙은 어머니와 3명의 어린 자녀를 두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돌연 사망했다. 그는 막대한 규모의 유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 어머니와 자녀를 고려해 상속·증여 신탁계약을 남겼다. 미국 1위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관리·운용을 맡아 20%를 어린이 자선재단에 우선 기부한 뒤 40%를 어머니, 나머지 40%를 자녀 3명에게 동등하게 나눠주도록 했다. 각 자녀가 나이에 따라 유산 운용의 수익금과 원금을 조금씩 가져갈 수 있도록 구조를 짰다. 이런 치밀한 상속·증여 신탁계약을 미리 맺어둔 덕분에 유언장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도 안정적인 유산 상속이 가능했다.


‘믿고 맡긴다’는 의미의 신탁(信託)은 고객(위탁자)이 자신의 재산을 맡기면 신탁회사(수탁자)가 관리·운용해주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일반적인 자산관리 수단과 달리 현금·유가증권·부동산·동산 등을 모두 담을 수 있어 이른바 ‘만능 바구니’로 불린다.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신탁을 개인의 재산증식과 노후대비, 상속·증여, 기업 자금조달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잭슨의 신탁 활용 사례는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의 신탁시장 규모(수탁액)는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709조원. 2015년 말과 비교하면 9개월 동안 무려 18%(108조1,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공모펀드 위축과 주식시장의 박스피 현상에 비춰보면 폭풍 성장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시장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1.9%에 불과하다. 한국이 제도를 본떠온 일본 신탁시장 규모는 무려 8,418조원(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GDP 대비 147.7%에 이른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제·사회환경과 신탁제도가 일본과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도 비슷한 성장세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탁액이 앞으로 GDP와 같은 수준으로만 늘어난다고 가정해도 1,000조원 이상의 신규 시장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기존 금융상품만으로는 저금리·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하고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 신탁업 전면 개편을 올려둔 상태다. 지난해 10월부터 신탁업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금융위는 올해 하반기 최종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눈치 빠른 금융권은 급팽창하는 시장과 제도 변화에 대비해 조직개편과 신상품 개발 등에 착수해 은행·보험·증권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지민구·박민주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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