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같은 지배구조 재편 문제가 그룹의 장기 성장과 연관된 문제라면 인사·투자 등 경영활동 전반에서 빚어지는 경영 차질은 기업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당장 인사와 조직재편 같은 경영활동이 ‘올스톱’됐다. 삼성의 경우 통상 12월 첫째 주에 사장단 인사를 하고 이듬해 1월께 조직재편안을 내놓는다.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담당할 전장사업팀 등이 이런 절차를 밟아 조직 내에서 베일을 벗고 그룹의 막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인사와 조직재편이 모두 뒤로 밀리면서 성장사업 발굴마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 내부에서는 1·4분기 중 사장단 인사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밖에 현대차와 롯데도 통상 연말에 진행하는 임원 인사를 뒤로 미뤘다. 롯데의 경우 이달 중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특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최대한 몸을 낮추는 형국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특검 수사가 최장 3월까지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인사가 벚꽃이 피는 4월에 단행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대대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SK 입장에서도 특검 수사가 곤혹스럽다. 만에 하나 최태원 회장이나 핵심 최고경영자(CEO)가 국정농단 의혹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성장전략에 드라이브를 걸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탓이다.
이밖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그룹 총수들이 출국금지로 발이 묶여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기업인들이 영업 전략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인맥’ 사회라고 자아비판하지만 미국은 그에 못지않게 끈끈한 ‘네트워크’에 의해 주요 비즈니스의 향배가 갈린다”며 “트럼프와 그 핵심 참모들에게 ‘눈도장’을 찍어도 모자랄 시기에 국내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은 매년 참석해왔던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올해는 불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신동빈 롯데 회장도 일본롯데홀딩스 이사회 등 현지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김승연 한화 회장이 트럼프 취임식에 초청 받았지만 기업인단을 꾸려 트럼프를 방문하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규모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