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닉스 인스티튜트에 보관 중인 냉동캡슐. 시체들이 언젠가 새생명을 되찾을 것이란 믿음 속에 영하 196도의 액화 질소 속에 냉동 보존돼 있다.
최근 난치 암에 걸려 죽은 14세 영국 소녀가 냉동캡슐에 안치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그녀는 미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클린턴 타운십에 위치한 ‘크로닉스 인스튜티튜트’의 냉동 캡슐에서 언젠가 새생명을 되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안식을 맞았다. 이 소녀가 잠든 캡슐은 3m 높이 액화 질소로 가득 찬 섬유 유리로 쌓인 흰 통으로, 이 통 안에는 소녀 이외에도 다섯 시신이 함께 했다. 그녀는 냉동 캡슐에 있는 145명의 시신 가운데 가장 젊다. 작은 탱크에는 소녀와 함께 했던 애완동물들도 영면했다. 냉동과정에는 3만 7,000파운드가 쓰였다. 삶과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 가장 큰 관심이다. 인류 역사 이래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왔다.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살려는 욕심으로 신하들을 전세계로 보내 불로초를 찾았다. 비록 이런 노력은 실패해 진시황은 기원전 200년 5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인류는 여전히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노화 방지에 좋은 성분을 알아내는 연구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인 구글도 불로장생을 미래 사업으로 내다보고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를 세웠다. 칼리코는 이미 제약회사 애브비(AbbVie)와 알파벳의 공동 출자로 15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인간 수명을 500세까지 연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칼리코는 노화 연구 과정을 지금껏 비밀에 부쳐왔다. 최근 칼리코가 생명연장의 답을 찾기 위해 두더지쥐를 연구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노화 방지를 위해 연구중인 동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수 연구에 활용 중인 벌거숭이 두더지쥐. 암에 걸리지 않고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일반 쥐보다 10배 이상 긴 32년 정도를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리코가 주목한 것은 바로 벌거숭이두더지쥐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케냐 등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데 몸길이 8∼10㎝에 이름 그대로 털이 거의 없다. 땅 속에서 남편 쥐 1~3마리를 거느린 여왕쥐를 중심으로 100여 마리가 마치 개미처럼 무리 지어 생활한다. 못생긴 동물로도 유명한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노화 방지 연구에 쓰이는 이유는 이 쥐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 때문이다. 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무려 10배 이상인 32년 정도를 산다. 사람으로 치면 800세 이상 사는 것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암에 걸리지도 않는다. 세포 변형을 막는 물질이 몸 안에서 만들어져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통증 신호를 온몸에 전달하는 단백질의 형태가 독특해 통증을 잘 느끼지도 않는다. 과학자들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혈액, 분비물, 유전자를 분석해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이 병을 막고 오래 살도록 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칼리코는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표준 지도 없이 특정 동물의 유전자를 각각 따로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북극고래는 200년 이상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포유류 중 하나이다. 반면 같은 고래 종류인 밍크고래의 경우 수명이 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북극 고래의 긴 수명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국제 연구팀이 북극고래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다른 포유류인 소, 쥐, 인간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북극 고래 유전자에서 특별한 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찾아냈다. 하나는 암에 저항하고 노화와 DNA 회복에 관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하나는 DNA 회복에만 관계했다. 이 두 가지 유전자의 독특한 역할 때문에 북극 고래가 오래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두 번째 실험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북극 고래에서 발견된 이 두 가지 유전자 변이를 실험용 쥐에 주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쥐가 더 오래 살고 질병에 저항하는 힘이 강해질 것인지를 관찰할 예정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존 스펜슨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8월 1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그린란드상어의 수명이 400년 이상 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북극고래의 수명 200년보다 두 배나 된다. 연구진은 각막에 포함된 탄소 동위원소의 함량을 측정해 상어의 나이를 알아냈다. 연구진은 그린란드상어가 수온이 낮은 북극 바다에서 살다 보니 수명이 늘어났다고 추정했다. 수온이 낮으면 신체 대사도 느리게 진행된다. 실제 그린란드상어는 한 해 1㎝씩 더디게 자란다. 그 만큼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미국 미시간대의 숀 수 교수는 2013년 선충 실험에서 온도가 낮아지면 DNA 손상을 막아 노화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효모는 감자에서 싹이 나듯이 새로운 세포가 돋아나 증식한다. 이 과정을 연구하면 노화의 비밀이 풀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칼리코가 주목한 두 번째 생물은 빵이나 술을 빚을 때 들어가는 발효 세균인 효모이다. 효모는 감자에서 싹이 나듯 나이 든 세포에서 새로운 세포가 돋아나 증식한다. 이 과정을 연구하면 노화 유전자를 찾고, 작동 원리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칼리코의 최고과학책임자인 데이비드 보트스타인 박사는 지난달 MIT 강연에서 효모를 배양하면서 오래된 세포를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오래된 세포와 새로 나온 세포에서 작동하는 유전자가 어떻게 다른지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로 수명을 연장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화를 막는 방법을 알아내려면 노화 자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때 많이 이용되는 동물이 초파리다. 벌거숭이두더지쥐와 달리 초파리의 수명은 60일로 짧다. 수명이 짧은 동물일수록 노화의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관찰할 수 있다. 초파리는 태어난 지 한 달이면 노화가 진행된다. 게다가 초파리를 이루는 유전자들의 역할은 대부분 해독돼 있어 과학자들은 초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실험하기도 쉽다. 초파리의 유전자는 사람과 약 70%가 같다.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많은 유전자가 초파리에서도 발견됐다. 면역 체계 등도 비슷하다.
아프리카 연못에 사는 ‘청록색 킬리피시’는 척추 동물로는 수명이 짧아 노화 연구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노화 연구에서 떠오르는 동물은 ‘청록색 킬리피시’라는 물고기다. 척추동물인 제브라피시, 쥐 등은 진화적 관계는 인간과 비슷한 데 생애기간이 길어 노화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잠비크, 짐바브웨 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의 연못에 사는 조그만 킬리피시는 부화된 지 3주 만에 성숙하여 2개월이 되면 늙고, 대부분 암에 걸려 5개월 즈음에 죽는다. 물고기는 인간처럼 척추가 있는데다, 청록색 킬리피시는 수명이 짧아 노화 연구 대상으로 적합하다. 뼈를 비롯해 피부 색소, 시력 등의 여러 신체 구조에서 나타나는 노화의 과정은 인간과 비슷하다. 또 어류의 신체 기관에서 노화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특징도 잘 관찰된다. 구글의 지원을 받는 칼리코 보다 적극적으로 노화 연구를 수행,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저스는 지난해 개인적으로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에 1억2,700만달러를 투자했다. 유니티는 관절염, 신장 질환, 심혈관 질환, 시력 감퇴, 청력 감퇴 등 노화 관련 질환을 막기 위해 근원적인 세포 노화 방지법을 찾는 회사다. 최근에는 동물실험에서 고지방 식이요법을 시행한 쥐에서 동맥경화증이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방식으로 노화 세포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전자 결제 업체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 역시 영생을 꿈꾸는 실리콘밸리 거물 중 한 명이다. 틸은 120세까지 사는 것을 목표로 성장호르몬(HGH)를 복용하고 팔레오 다이어트(원시인 식단)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틸은 특히 ‘센스(SENS)연구재단’의 ‘므두셀라 프로젝트’를 비롯해 14곳의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며 인간 수명 연장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 조건은 ‘노화를 막고 세포를 재생할 수 있는 약물 개발’이다. 므두셀라는 성서에 나오는 최고령자로 969세까지 생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과 오라클 공동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도 노화 방지와 질병 정복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폴 앨런은 지난 2014년 ‘앨런 세포생물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앨런이 이 분야에 지원한 금액이 6억 달러(약 7,200억원)가 넘는다. 앨런은 뇌와 세포의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노화를 막을 방법을 찾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없어진다고 믿는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공동창업자도 영원히 살고 싶다는 소망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1997년 엘리슨 의료재단을 설립해 노화 방지 연구에 4억 달러의 자금을 내놨다.
이 같은 거물들의 투자가 성과를 맺어 불로장생의 꿈이 이뤄질 날을 상상해 본다. 이 때가 되면 냉동 캡슐에서 꺼낸 14세 영국 소녀가 암에서 완치돼 다시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