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요정 김복주’는 같은 날 시작한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물론, 오지호와 허정은 부녀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려낸 KBS 드라마 ‘오 마이 금비’에게도 밀리며 16부작 내내 동시간대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첫 회의 시청률은 고작 3.3%(닐슨 코리아, 전국기준)에 불과했고, 최고 시청률도 5.4%로 5%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역도요정 김복주’ 이성경 / 사진 = 오훈 기자
하지만 ‘역도요정 김복주’는 단순히 5%가 채 안 되는 저조한 시청률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시청률은 5%도 안 됐지만 ‘역도요정 김복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니아 시청자들이 넘쳐났고,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착하고 맑은 드라마라는 호평이 자자하며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들이 넘쳐났다.
이런 ‘역도요정 김복주’의 시청률만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마성 같은 매력은 시청자들에게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역도요정 김복주’의 착하고 맑은 매력은 사정없이 전파됐다. 이것은 물론 주인공 ‘김복주’를 연기한 이성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를 하면서 너무나 행복해졌어요. 마음 속의 고민들, 어른들의 마음들, 이런 것을이 다 ‘복주’를 연기하면서 정화되고 순수해지고. 그래서 오히려 찍고 나서 몸은 힘들어도 컨디션은 너무 좋아졌어요.”
‘역도요정 김복주’는 근래 보기 드문 맑고 착한 드라마였다. ‘역도요정 김복주’에는 주인공을 질투해 모함하는 악녀도 없었고,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 드라마의 필수요소도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직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풋풋한 청춘들이 펼치는 꿈에 대한 맑고 순수한 이야기와 손잡고 키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첫 연애의 풋풋함만이 가득했다.
‘역도요정 김복주’ 이성경 / 사진 = 오훈 기자
“시청률은 낮아도 주변에서 기죽지 말라고 응원을 많이 해줬고, ‘복주’를 보며 힐링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저도 드라마를 하는 내내 ‘이성경’이 아닌 ‘복주’로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집에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지? 내가 언제 이런 표정을 지었지?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복주’에 너무 빠져서 연기를 하다보니 자연히 ‘복주’의 마음이 되어 표정을 짓고 대사를 했던 거죠.”
“그래서 주변에서 저를 ‘이성경’이 아닌 ‘복주’라고 불러주는 말이 너무 듣기 좋았어요. 작품 하기 전에도 ‘이성경’이 아닌 ‘복주’로 불리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드라마가 끝나니 다들 저보고 ‘복주’라고 불러주더라고요. 엄청난 감동이고 기쁨이었죠.”
2016년 이성경은 정말 극적인 반전을 선보였다.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으로 시작해 SBS 드라마 ‘닥터스’에서는 주인공 박신혜를 견제하는 악녀 캐릭터를 선보였고, MBC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는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보통 서브 여주인공 출신은 메인 여주인공이 되기 힘들다는 방송가의 편견을 불과 1년 만에 깨버린 것이다.
배우로서 이성경이 선보인 이미지의 변신 역시 놀라웠다. 모델로 이미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했고, 배우로서도 ‘치즈인더트랩’과 ‘닥터스’에서 선보인 서늘한 연기의 기운이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는 어디 갔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이제 이성경을 보며 ‘닥터스’의 ‘진서우’를 떠올리기보다 ‘역도요정 김복주’의 귀여운 청춘 ‘김복주’가 먼저 떠오를 정도다.
‘역도요정 김복주’ 이성경 / 사진 = 오훈 기자
“저는 솔직히 제가 모델을 하면서 차가운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전 항상 제가 복주처럼 동글동글하다고 생각해와서 화려하다는 표현이 낯설었거든요. 어릴 때도 화장 안 하고 있으면 진돗개 강아지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고양이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여배우로서 역도선수를 연기한다는 것도 이성경에는 큰 부담이었다. 아무리 주인공의 자리가 중하다고 해도 모델 출신의 마른 여배우에게 역도선수라니. 물론 역도에는 다양한 체급이 존재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이성경의 머리에는 분명히 장미란 선수의 모습이 먼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처음엔 대본을 받고 역도라는 말에 놀랐죠. 체급부터 올려야 한다고. 그래서 망설이는 마음으로 대본을 읽었는데 대본이 너무나 재미있는 거에요. 너무 재미나서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했는데,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그 작품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사실 저도 알겠더라고요. 무모한 도전이라고 해도 이 작품이 너무 하고 싶었고, 하고 싶었기에 그만큼 고민이 많았으니까요.”
“역도를 배우는 것도, 살을 찌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복주’가 되는 과정이었어요. 어느 날은 차를 타고 가며 대본을 읽는데 갑자기 찡하고 가슴이 아파오더라고요. 그때서야 내가 아직도 ‘복주’를 만나지 못하고 ‘복주’를 멀리서 바라만 봤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때부터 마음을 열고 복주를 만날 준비를 하며 귀를 기울였죠. 살이 찌고 이런 외적인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완벽하게 복주가 되는 것이었어요.”
‘역도요정 김복주’ 이성경 / 사진 = 오훈 기자
배우 역시 사람인지라 우울한 작품을 연기하다보면 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기분까지도 함께 우울해진다. 반대로 밝고 명랑한 작품을 연기하면 배우의 기분 역시 함께 상승효과를 만들어낸다. ‘역도요정 김복주’의 이성경도 마찬가지다. ‘닥터스’를 끝내자마자 드라마에 합류해 체력적으로는 바닥이었지만, 이성경은 어느 순간 산악 마라톤과 같은 힘든 장면을 촬영하고도 체력이 남아도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복주’의 밝고 활기찬 기운이 이성경에게 전염된 것이다.
이성경에게 ‘역도요정 김복주’는 앞으로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배우로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까지 캐릭터와 자신이 하나가 된 적도 처음이었다. ‘역도요정 김복주’를 통해 이성경은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김복주’가 준형(남주혁 분)과의 사랑을 통해 역도선수로도, 한 개인으로서도 성장하듯, 이성경 역시 ‘역도요정 김복주’를 통해 배우로서도, 이성경 개인으로서도 한층 성장하게 됐다. 행복한 드라마가 만들어낸 행복한 결말이었다.
“종방연날 엄청나게 울었어요. 시청률은 낮았지만 잘 했어, 수고했어 이런 기사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이런 기사들, 댓글들 우리끼리 막 돌려보면서 이것봐 우리 칭찬받고 있어. 사랑받고 있어. 시청률이 낮아도 우린 진심을 담아 연기를 했고, 다들 그 진심을 알아주셨어요. 그래서 너무나 행복했어요.”
“작품을 하며 힐링을 한다는 것을 처음 느껴봤어요.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좋았다기보다, 좋은 작품을 하며 저희도 힐링이 됐어요. 드라마 촬영이 끝날 때쯤 메이킹 영상 인터뷰를 하면서 ‘복주야 사랑해’라고 말하다가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제가 복주를 너무 사랑했나봐요. 이젠 더 이상 복주를 만날 수 없잖아요. 저는 아직도 복주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저는 복주가 많이 보고 싶을 거에요. 복주야 사랑해.”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