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뷰]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가 만들어낸 日 애니메이션 세대 교체·희망의 노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일본에서 누적 1800만 관객, 누적 흥행수익 200억 엔을 돌파하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은 역대 일본영화 흥행 2위에 등극했다. 그 뒤를 이어 한국에서도 1월 4일 개봉해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301만)을 넘어설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너의 이름은.’이 보여주고 있는 이런 폭발적인 흥행세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이끌어온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제외하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드디어 다음 세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 / 사진제공 = 메가박스 플러스엠


일본 애니메이션의 1세대에는 ‘아톰’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忠)가 있었다. 1928년 태어난 데즈카 오사무는 1963년 일본 최초의 주간 TV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을 후지TV에서 방송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틀을 닦았다.

데즈카 오사무의 다음 세대에는 1941년에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宮? 駿)가 있었다. 1963년 토에이 동화에서 애니메이터의 경력을 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장화신은 고양이’ 등의 작품을 거쳐 1971년 ‘루팡 3세’의 TV 시리즈 연출을 맡게 됐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연출하며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했고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위의 포뇨’까지 연출하며 서브 컬쳐로 취급받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장르로 세계 영화계에 알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늘 속에 다양한 개성의 작가들이 넘쳐났다. ‘아키라’의 오토모 가츠히로,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세대 혹은 그 직후 세대에는 신선한 발상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며 ‘재패니메이션 붐’을 이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고로 감독 ‘코쿠리코 언덕에서’ / 사진제공 = 스튜디오 지브리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다음 세대는 좀처럼 쉽게 등장하지 못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픽사(Pixar)와 드림웍스(Dreamworks)의 경쟁구도 속에 2D 애니메이션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갔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채 ‘원피스’, ‘도라에몽’, ‘크레용 신짱’, ‘명탐정 코난’ 등 자국내 화제작들의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재생산해가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


이는 지브리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찌감치 콘도 요시후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귀를 기울이면’의 연출을 맡겼지만, 콘도 요시후미가 1998년 38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지브리 역시 후계자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그 사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전기’와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연출하고,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마루 밑 아리에티’와 ‘추억의 마니’를, 모리타 히로유키가 ‘고양이의 보은’을 연출했지만 누구 하나 후계자로 자리잡지 못했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은퇴를 결심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다시 돌아와 ‘벼랑 위의 포뇨’와 ‘바람이 분다’를 연출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목 지브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음 세대의 후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작은 호소다 마모루(細田守)였다. 1967년생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1999년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을 연출하며 데뷔한 후 2006년 그의 스타일을 세계에 알린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등을 연출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또 다른 감성 터치의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일명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이 등장한다. 1973년생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인 제작에 가까운 방식으로 2002년 단편 ‘별의 목소리’를 선보였고, 이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cm’,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 등을 연출하며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깊이 있는 감성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등장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3세대가 이제 시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개성 강한 장르물이 넘쳐난 2세대와 다르게 이들은 ‘청춘’과 ‘감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제는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에 접어든 2D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3D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2D 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만들어내며 일본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만들어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의 흥행은 비로소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후 세대를 대중에게 알렸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아이들이나 보는’ 장르로 취급하며 오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만을 정통 애니메이션 취급하던 한국에서도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물이 됐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 / 사진제공 = 메가박스 플러스엠


물론 ‘너의 이름은.’의 성공이 향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라는 천재적인 아티스트가 1인 제작 시스템을 극한으로 활용해 만들어낸 기적의 산물이기에, ‘너의 이름은.’의 성공 이후 일본 애이메이션 업계가 전부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같은 스타일로 전환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도전이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대신 기존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재탕에만 매달리던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줬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보인다. 지나치게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있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을 통해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낼 수 있는 꿈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이것이 신카이 마코토가 만들어낸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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