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7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WEF의 창업자 겸 회장와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7일 오전(현지시간)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회장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표정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났다.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이날 개막한 2017 다보스포럼 무대에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시 주석 연설의 키워드는 ‘경제 세계화’(Economic Globalization)였다. 타깃은 명백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트럼프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연설의 대부분을 보호무역주의, 반(反)난민정책에 대한 비판에 할애하며 세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자유무역주의 진영의 명실상부한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시 주석은 먼저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비판에 힘을 실었다. 그는 “세계화를 글로벌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그동안 발생한 금융위기들은 규제의 실패이지 세계화의 실패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서 “우리는 더 나은 경제적 통치체제를 만들어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해야 한다”며 “이는 무역과 투자를 억제하는 보호무역주의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중국은 세계화를 향한 문을 크게 열어 놓을 것이고 그리고 그 문을 닫지 않겠다”고 말한 뒤 “다른 나라도 함께 문을 열어 놓기를 빈다”며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난민 문제 등 세계 안보와 관련된 사안을 언급하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테러리즘과 난민이라는 거대한 도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며 “우리는 평화를 약속하고 안정성을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시진핑 주석은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오는 난민들이 세계의 걱정거리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개방된 시장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분히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 미국을 지키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을 겨냥한 발언인 셈이다.
시 주석은 파리 기후협약에 참석한 국가들이 협정을 지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글로벌 국가들은 우리는 기후변화, 인구 고령화와 같은 도전에 함께 맞서야 한다”며 “파리 기후협정 참여국들은 합의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선 때부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파리 기후협약을 철회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시 주석을 올해 행사 최고의 스타로 점찍은 WEF와 글로벌 엘리트들 역시 중국에 리더의 왕관을 씌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전 세계 경제·정치를 주무르는 거물들의 토론장인 다보스포럼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자리를 위협받았다. 그동안 자유주의 진영의 리더 역할을 자처하며 자유무역·세계화 등 WEF의 세계관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미국은 트럼프 당선인의 등장과 함께 이를 뿌리부터 부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포럼 참석을 자신을 지지해준 포퓰리즘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하며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내정자 등 주요 측근들의 다보스행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이때문에 클라우스 슈바프 WEF의 창업자 겸 회장이 기조연설에 앞서 “역사의 전환점에서 중국이 (연차총회의 주제인)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지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시 주석을 격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다보스=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