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지금까지 분사는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차원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단순 분할에 그치지 않고 향후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현대중공업이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현대중공업은 18일 현대로보틱스(가칭)를 공정거래법상 사업 지주회사로 설립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회사를 현대중공업(조선·해양·엔진 부문)·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서비스(현대글로벌서비스)·로봇(현대로보틱스)·그린에너지(현대그린에너지) 등 6개 독립 법인으로 쪼개는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의 이 같은 분할 계획 발표는 지주사 전환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돼왔다. 현대로보틱스가 분할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13.4%와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를 넘겨받으면 지주사 요건을 자연스레 만족하기 때문이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 지분 10.2%를 보유하고 로보틱스가 그 아래로 현대중공업·현대일렉·현대건설기계 지분 13.4% 및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를 가져가는 구조다.
인적 분할로 지주사 체계의 얼개는 만들어졌지만 지주사 전환 마무리를 위한 지분 정리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현대로보틱스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분율이 13.4%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일렉·현대건설기계 지분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대해 “신설 법인이 재상장되는 5월 이후 적절한 시점에 지분을 추가 확보해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겠다”고 밝혔다. 기한은 2년이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향후 현대로보틱스가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정몽준 이사장은 인적 분할을 거치면서 10.2%씩 직접 보유하게 된 현대중공업과 현대일렉·현대건설기계 지분을 현대로보틱스에 현물 출자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일렉·현대건설기계에 대한 현대로보틱스의 지분율이 기존 13.4%에서 공정거래법을 충족하는 20%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정 이사장의 현대로보틱스 지분율은 10.2%에서 40% 수준까지 올라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오너의 지분율을 높이고 추후 있을 경영권 승계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며 “지주사 전환을 승계에 활용하는 전형적 형태”라고 해석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한 순환 출자 고리도 끊어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자산 규모가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소속 회사에서 추가로 계열 출자가 발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존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순환 출자 고리에서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현대로보틱스 고리가 추가됐다. 미포조선은 오는 10월까지 보유 중인 현대중공업 지분 약 8%를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