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왕십리의 한 인쇄소에서 일하던 김 씨(가명, 30세)는 한 순간의 작업 부주의로 왼손 손가락 5개가 전부 잘려나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에 사고 직후 인근 몇몇 대형 병원 응급실을 급히 찾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곳이 많아 패혈증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서울연세병원은 달랐다. 김 씨의 연락을 받은 뒤 신속히 수술 팀을 세팅한 것은 물론 성형외과 전문의의자 병원장인 조상현 원장이 직접 수술을 진행한 것이다.

조상현 원장이 집도한 응급외과수술이 약 16시간을 넘어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김 씨는 사고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운전을 하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칫 과다 출혈과 패혈증으로 생명을 잃거나 평생 불구의 몸으로 지내야 했을 지도 모르는 30대 청년의 삶이 서울연세병원 조상현 원장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환자 몰리는 대형병원, 외면 받는 응급환자

서울연세병원은 일반외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3개 진료과와 365일 24시간 응급외과수술을 시행하는 외과병원이다. 특히 응급환자의 경우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수용이 어렵거나 여의치 못할 때 2차 병원인 이 곳으로 후송되는 경우가 많다.

조상현 원장은 “대형병원을 통해 우리 병원으로 오는 환자가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대형병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다치면 무조건 큰 병원부터 가보자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대형병원도 환자가 많을 때는 전문의가 부족하고 특히 야간의 경우는 더 심해 결국에는 그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2차 병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에는 응급상황임에도 치료를 제때 못 받고 병원만 전전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살배기 아이가 할머니와 차도를 건너다가 후진 차에 치어 13곳의 대형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못받고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런 일은 예고된 인재에 해당된다. 환자에 비해 외과의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을 꺼려하는 시대에는 기피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공백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 통계로 보면,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3.3명에는 못 미치지만 의사 증가율은 OECD국가 중 1위이고, 2020년이 되면 OECD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의료계는 분석했다.


다만 외과관련 전공 전문의는 기피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상황을 보면 외과계 전공의는 대개 일주일 164시간 중 100시간 이상 외래진료를 보고 수술방에 들어가 혹사당한다. 야간 진료나 수술을 하면 다음 날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병원 여건상 계속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한 지역거점병원의 외상전담 전문의수는 단 1명이다. 이 의사는 당직 때면 24시간 병원에서 대기하며 응급환자의 수술을 돕는다. 다음날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이 오면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때가 많다.

조상현 원장은 이에 대해 “사람은 누구나 편하고 안정된 길을 가길 원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전공을 선택하고 전문의를 딸 때 힘만 들고 자기생활을 반납해야 한다면 누가 그 길을 택하겠는가? 하지만 정말 의사로써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의 치료에 앞장설 의사가 있다면 이런 부분은 정부나 제도가 뒷받침 되어 의료 환경을 대한 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환자를 살리려는 열정과 사명감만으로 대한민국 땅에 설 수 있는 의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고 조언했다.

최근 극심한 경기침체와 더불어 국내 의료계도 심상찮은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형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과의 불균형 문제이다. 대형병원은 환자 쏠림이 더욱 심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1차, 2차 병원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과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의료인력 배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의료제도, 의료인의 비윤리적 행위와 의료기관의 환자기만 행위 등에 대한 단속과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한다.

□ 낭만닥터들이 상주하는 재건성형 전문병원이 꿈

외과의사로서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조원장이 환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 지긋하신 노인에 이르기까지 의사와 환자로 맺어진 인연을 끊지 않고 자신을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환자는 살리고 봐야죠. 그리고 일상으로 돌려보내야죠. 가끔 그런 분들이 시간이 지나서 연락을 해옵니다. 잘 살고 계시니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있죠. 가장 보람되죠.”라고 말한다.

조 원장은 하루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다. 물론 다른 의사들과 교대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응급환자가 생길까 잠도 편히 못자고 쪽잠을 자곤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날 때면 수술환자의 사진을 보거나 의학 서적을 뒤척이며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곤 한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까칠한 피부, 10년이 넘은 낡은 승용차를 보면 웬만한 의사들은 별로 걷고 싶지 않은 길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조 원장에게도 꿈이 있다. 바로 재건성형 전문병원을 만드는 것. “저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일반외과 전문의 외에 성형외과 전문의 더블보드를 갖고 있어서 한때 미용성형병원에서 많은 제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군의관 시절부터 신체의 절단 부분을 연결해 주는 미세수술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데 이를 발전시켜 우리나라 최고의 재건성형 전문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쳐서 장애를 가질 수 있고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특히 얼굴외상 분야는 특화되지 않아 이를 발전시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의 의료를 알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런 힘든 생활과 노력 덕택으로 조 원장은 많은 후배 외과의사로부터 귀감을 받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선후배 외과의사가 모인 자리에서 ‘외과의사가 나아가야 할 길’ 사례 발표해 큰 박수와 주목을 받았다. 요즘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외과 분야를 개척해 묵묵히 걸어가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 원장은 “아이들이 다쳐서 오면 저희 의료진은 두 세배 힘듭니다. 아이 치료도 해야 하고 예민해진 부모님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죠.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 폰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많을 때는 안전사고가 많으니 주의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쳐서 올 때 걱정 없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부 관계자께서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현실적인 부분 등을 고민해 주신다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기자 dong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