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불황과 구조조정 여파로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사상 최악의 고용대란이 우려되면서 정부가 연이어 대책을 내놓고 대선 주자들도 너도나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숫자를 부풀리고, 대선 주자들의 공약은 과거 발표내용을 재탕하거나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는 만들기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게 더욱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와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대책이 알맹이는 없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보여주기식 구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3만개…절반 이상이 숫자놀음=정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올해 공공부문 조기 채용계획에 따르면 공무원은 4만2,000명, 공공기관 2만명 등 총 6만2,000명이 채용될 계획이다. 상반기에만 공무원 1만9,000명, 공공기관 1만1,000명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초부터 실업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정부 등 공공부문이 앞장서서 고용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3만명이라는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채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숫자를 산출한 기준이 실제 채용이 아니라 합격자와 채용이 뒤섞여 있다. 정부가 발표한 3만명 전부가 상반기에 일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은 합격자 발표 기준, 공공기관은 채용을 기준으로 했다”며 “공무원은 합격 이후 임용되기까지 대기하는 인원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합격 기준으로 산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반기에 3만명을 채용한다는 정부 발표만 본 공무원,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은 채용을 앞당겨 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가 상반기에 공공부문이 채용을 주도한다는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과도하게 끼워 맞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부문만 쳐다보고 공약 재활용하는 대선 주자들=탄핵 정국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공약도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유력 대권 주자들의 공약이 전체 고용시장에서 10%도 채 되지 않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일자리 중 공공부문은 2014년 10.1%, 2015년 9.7% 수준이다.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과 맞닿아 있는 공약은 근로시간 단축 정도다.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의 고용 증대 등 주로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걸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자리 공약에서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의 고용주이며 이제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며 공공부문에서 신규 일자리 81만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개 등 총 13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공공부문 일자리 중 상당 부분을 소방·경찰·복지 공무원으로 대거 확충하겠다고 공약했다. 재원 마련 계획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국가 예산 22조원을 쏟아부었는데 이 돈이면 연봉 2,200만원짜리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 전 대표의 공약은 단순 계산일 뿐 구체적인 재원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22조원으로 1년짜리 임시직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는 있지만 정규직 공무원의 경우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년이 될 때까지 매년 이 만큼의 예산이 투입되야 하며 퇴직금·연금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숫자라는 지적이다.
다른 후보들 역시 다르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년 내 100만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보육·의료 부문 공공 일자리 확대 공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면 되니까 비교적 만들기 손쉬운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공공부문의 비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말했다.
일자리 공약의 재탕도 눈에 띈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임기 내 공공부문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에는 숫자를 81만개로 바꿨다. 주 52시간의 법정 근로시간 준수도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이다. 다른 대선 주자들은 첫 공약이기 때문에 재탕은 없지만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법정 근로시간 준수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성장에 따라 민간 부문의 투자가 증가하고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단기적인 효과를 보는 고육지책은 될 수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 완화,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일자리 정책의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정곤·임지훈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