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광화문 글판으로 친숙한 ...'교보생명 사옥’

무뚝뚝한 모습 안에 섬세함이 … 서울의 중심 지키는 ‘열린 건물’

서울의 중심가로인 종로와 세종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교보생명 사옥’은 서울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좋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창업주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송은석기자


종로와 세종로는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중심지다. ‘교보생명 사옥’은 종로와 세종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서 있다. 이처럼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 종로 1가 1번지에 우뚝 서 있는 교보생명 사옥에는 교보생명 창업주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교보생명(옛 대한교육보험)은 지난 1958년 을지로에서 출발을 했다. 당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는 개업사에서 “오늘의 개업식이 초라하다고 서글퍼 하지 맙시다. 본인은 25년 이내에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 22년 만인 1980년 교보생명 사옥을 완공하면서 꿈을 실현했다. 이후 3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보생명 사옥은 서울 가장 좋은 자리를 지키는 상징 같은 건축물로 남아 있다.



● 최고의 자리에 사옥을 짓기까지

당초 33층서 정부 요청에 23층으로

청와대 쪽 옆면 뒤늦게 창 만들기도



최고의 자리에 최고의 건축물을 짓겠다는 창업주의 꿈은 녹록지 않았다. 교보생명은 사옥을 짓기 위해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 교보생명 사옥이 자리한 일대 땅을 사들였으나 정부에서는 서울 중심가에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호텔을 지을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신용호 창업주는 이를 거절했다. 사옥을 짓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애초 교보생명 사옥은 33층으로 지어질 계획이었으나 공사 도중 정부의 요청으로 23층으로 낮아졌다. 그때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연호석 교보생명 부동산운영지원팀 차장은 “교보생명 사옥에는 모두 18개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사람들이 비교적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데 이는 애초 고층 건축물을 계획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공을 1년 앞둔 1979년에도 위기가 있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상의 이유로 22층까지 지은 빌딩을 17층까지 낮추라는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신용호 창업주가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써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건물의 높이 외에도 외관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았다. 2011년 교보생명 리모델링 전만 하더라도 청와대 쪽을 바라보면 세로면은 창문이 막혀 있었다. 청와대 측에서 청와대가 보인다는 이유로 막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교보생명 사옥. 반대편 측면의 경우 애초 준공 시에는 청와대의 요청으로 창이 없었으나 지난 2011년 리모델링을 통해 창을 만들었다./송은석기자


● 건물 모양은 화려함 없이 투박하지만

1층 로비는 나무가 많은 시민 쉼터로

광화문 광장 인파 몰릴 땐 화장실 개방



가로 90m, 세로 33m, 높이 97m로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는 이 건축물은 효율적인 오피스 빌딩의 대명사다. 교보생명 빌딩은 죽어 있는 공간이 거의 없고 공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데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연결돼 있어 교통도 편리해 임차율이 98%에 달한다.

이처럼 기능적으로는 훌륭하지만 길을 지나다가 언뜻 바라보는 교보생명 빌딩은 무뚝뚝해 보이기 그지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한 블록 떨어진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와 같이 한 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런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무뚝뚝한 겉모습과 달리 교보생명 빌딩은 입주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배려하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1층 로비에 마련돼 있는 ‘그린하우스’다. 1,042㎡(면적)·5층 높이인 그린하우스에는 아이비·한라봉·동백나무·식나무 등 150여 종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들 나무종은 전부 남쪽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수종이다.

연 차장은 “일반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종로를 바라보는 교보생명 빌딩 정면 앞에 심어진 느티나무 여섯 그루에서도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느티나무는 예로부터 마을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마을 입구의 정자목으로 많이 쓰였다.


촛불집회 때는 시민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몰린 수십만의 인파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로비층 화장실을 개방했으며 로비층만으로도 모자라 고객접견센터가 있는 17층까지 열어줬다.

교보생명 사옥 1층 로비에 마련되어 있는 ‘그린하우스’에는 아이비, 한라봉, 동백나무, 식나무 등 남쪽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수종 150여 종이 심어져 있다. /송은석기자


● 불법 광고물로 오해를 받았던 ‘광화문 글판’

감동의 글귀로 시민에게 위안 전해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도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의 ‘방문객’ 中에서.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생명 사옥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익숙한 건축물이다. 교보생명 사옥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외벽에 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광화문 글판’이 큰 역할을 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한 구절도 2011년 여름 광화문 글판에 걸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많은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광화문 글판에 걸린 글귀를 공유했으며 그때마다 해당 글귀는 물론 교보생명 사옥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광화문 글판은 1991년 1월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의 제안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총 80번 글귀를 내걸었다. 초창기에는 일정한 주기 없이 글귀를 바꿨으나 2001년부터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2월) 등 분기에 한 번씩 새로운 글귀를 내걸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광화문 글판이지만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불법 광고물로 오해를 받아 벌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광화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초창기에는 계몽적 성격의 메시지가 많았다. 처음으로 걸린 글귀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998년부터는 시민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보다 감성적인 메시지로 변했다. 2007년에는 환경재단에서 선정하는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이름을 올려 사회적인 역할을 인정받기도 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교보생명 사옥 지하에 위치한 ‘교보문고’. 예전에는 책을 사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책을 보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꼈다. /사진제공=교보생명


■ 교보생명 사옥 설계자는 …

교보 창업주, 일본 美 대사관에 반해 시저 펠리에 설계의뢰

타일색으로 서울 특성 반영 … “주미 대사관과 차이가 없다” 비판도



교보생명 사옥을 설계한 건축가는 시저 펠리(사진)다. 펠리는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와 홍콩 투 인터내셔널 파이낸스 센터 등 초고층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펠리에게 설계를 의뢰한 것은 일본 도쿄를 찾았다가 본 주일 미국대사관 건물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교보생명 사옥에도 주일 미국대사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실제 펠리는 과거 인터뷰에서 “주일 미국대사관과 같은 양식을 가져왔다”며 “다만 비례가 다르고 전혀 다른 재료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차이 중에 하나는 교보생명 사옥의 마감 재료로 쓰인 타일이다. 펠리는 마감재로 타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타일이라는 재료가 서울에서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으며 타일의 색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토양 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사옥 설계에 있어 서울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교보생명 사옥이 서울이라는 역사적인 도시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주일 미국대사관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겉으로 보기에도 주일 미국대사관과 교보생명 사옥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 건축가는 “주일 미국대사관은 수교국의 문화 양식을 섬세하게 반영한 측면이 돋보이는 반면 교보생명 사옥은 주일 미국대사관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도시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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