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클럽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언론들은 당선 후에도 줄곧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분열로 몰고 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의 이 같은 표현처럼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부터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인 19일(현지시간)까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현지 언론의 우려는 ‘분열’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가난한 사람도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멜팅 포트(melting-pot)’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직후 ‘통합의 길’을 걷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행동은 달랐다. 언론 인터뷰와 트위터를 통해 각종 논란을 야기했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소 가득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실망한 유명인사들은 트럼프를 외면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는 미국 영주권을 찢어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영부인 멜라니아의 옷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디자이너들이 속출했다. 취임 이튿날인 21일에는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행진(The Women’s March)이 예정돼 있다. 미 언론은 “1913년 여성 참정권자들의 집회 이후 최대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분열상은 여론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갤럽조사를 보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공화당원 82%, 민주당원 8%로 극과 극을 달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첫 취임 당시 양측의 고른 지지를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공화당 소속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취임 당시 민주당원 지지율 31%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미국 청년 사이에서도 트럼프 시대에 미국의 분열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비영리단체 젠포워드가 지난해 12월 18~30세 미국인 1,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미국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응답이 60%로 절반을 넘은 반면 단합을 예상한 응답은 19%에 그쳤다. 인종별로는 분열을 예상한 흑인 비율이 70%에 달했고 그의 주요 지지층인 백인조차 50%를 넘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인들의 ‘삶의 질’을 묻는 질문에서도 인종·계층 간 편차가 컸다. 유색인종은 54%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반면 백인은 53%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의 52%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한 반면 중산층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 비율과 더 나빠질 것이라는 비율이 유사하게 나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노믹스가 ‘일자리를 늘려 중산층을 살리겠다’는 공약과 달리 빈부격차만 확대해 미국의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18일 NHK와의 인터뷰에서 “보호 무역주의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트럼프를 지지한 중산층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역장벽이 수입품 가격을 올려 저소득층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세금과 부채를 동시에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정책은 불가능하며 부유층만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이민정책도 인종 간 통합을 추구해온 미국 사회에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불법 체류자 국외 추방을 최우선 정책으로 꼽고 있다. 이 정책이 실현되면 미국에 거주하는 유색인종이 대부분인 불법 체류자와 백인 간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심지어 트럼프가 촉발한 미국의 분열은 유럽 분열의 ‘자양분’이 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FT 정치담당 에디터 필립 스티븐슨은 트럼프 취임을 앞두고 게재한 논평에서 “트럼프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가 앞으로 유럽에 대한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최악의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르몽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르펜은 25~26%의 지지를 얻어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23~25%)를 처음으로 역전했다. 르펜은 대통령 당선 시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Frexit)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통신은 “프랑스 선거는 트럼프 당선 이후 포퓰리즘 세력과 기성 세력이 맞붙는 첫 선거”라며 “르펜이 결선투표라는 관문을 넘기 힘들겠지만 지지율 1위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