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재욱, 끊임없이 궁금한 배우가 선택한 ‘다른 길이 있다’



지난 19일 개봉한 ‘다른 길이 있다’(감독 조창호·제작 영화사 몸)는 사는 게 지옥 같은 이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김재욱은 “외모적인 부분보다 정서적으로 포커스를 맞춰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고 전했다.

배우 김재욱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영화 속에선 멋진 김재욱이 아닌 ‘공허한 수완’(김재욱 분)이 등장한다. 20대 때는 대중에게 꽃미남으로 소비된 이미지 탓에 좀처럼 이런 결의 작품을 만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번 영화가 대단한 영화라고 단정 짓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릴 것은 분명해보인다. 또한 인간 김재욱이 살아온 삶이 궁금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하려는 남자 수완은 위태로운 얼음 위를 걸어오듯 관객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어린 시절 그가 목격한 엄마의 충격적인 사건은 평생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영화는 잔인하게 상처를 도려내거나, 부조리한 사건을 무자비하게 마주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닿을 듯 닿지 않는 상처입은 남녀의 심연을 조금씩 펼쳐보인다. 그렇게 인물들은 표정과 분위기로 더 많은 생의 쓸쓸함을 보여줬다.

“제가 늘 갈망해왔던 주제와 톤을 갖춘 영화입니다. 배우의 결과 그게 맞는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는 갈증이 컸어요. 언젠가 운명적으로 찍어보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었던 시나리오를 만난 거죠. 그래서 더 의미 깊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길이 있다’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유의미한 작품이 될 듯 하다. 누군가는 자신과 닮은 인물을 보고 가슴이 아파 고개를 숙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감의 여지 역시 큰 영화이다.

“‘누가 봤으면 한다’는 말이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는데, 만든 저희 입장에서는 제목 ‘다른 길이 있다’처럼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몇몇 관객들은 고통스럽다는 분도 있었고, 영화가 끝까지 가기 전에 외면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고 했어요.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한데, 그럼에도... ‘극단적인 끝’이라는 곳까지 갈지라도 ‘시작’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100가지 가능성을 지닌 배우 김재욱이 보여주지 않았던 또 다른 부분을 보여준다. 세상의 끝에 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그저 책 속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고, 현실에 뿌리를 내린 삶으로 다가오는 건 조창호 감독, 배우 김재욱, 서예지의 공이 크다. ‘또 다른 길’에 대한 배우로서 가능성과 삶에 대한 위로는 절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사진=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사진=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사진=영화사 몸,무브먼트.MOVement
“개인적으론 배우 김재욱이 아닌, 김재욱이란 사람이 보였으면 해요. 저도 세상을 살면서 고민 하고, 고통 속에도 빠져 어떻게 빠져나올지 발버둥을 친 경험이 있어요. 이렇게 내가 가진 경험들에 더해 배우로서 전하고 싶은 어떤 말이나 감동을 연기로 표현하고 싶어요.”

상처 한 조각씩을 몸 속에 쌓아놓는 게 일상이 돼 버린 수완이 감정이 폭발하는 신은 후반 ‘눈사람과의 한판 승부’ 장면이다. 생명이 없는 눈사람과의 몸싸움은 후련하긴 커녕 지옥 같은 현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킬 뿐.

“눈사람을 때리는 건, 수완에겐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이 인물이 춘천으로 가기까지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한 적이 없어요. 아프다거나, 애처롭다거나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아가는 인물이죠.

그런데 정말 자기가 생각해왔던 마지막을 떠올리니, 끝을 마주하기 직전에 거기서 뭔가 알 수 없는 게 터진 걸로 볼 수 있어요. 사람이 아닌 눈 사람에게 그 감정을 푼 게 어찌 보면 더 수완이란 인물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편의 영화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 역시 여기에 동의했다. 적절하고 좋은 타이밍에 다가오는 영화가 결국 인생 영화라는 것.


“어떤 식의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물론 중요해요. 그런데 관객들의 심리상태 역시 무시 할 수 없어요. 어린 시절 별 감흥 없이 봤던 영화인데, 커서 다시 보면 ‘이게 이런 영화였어?’ 라며 공감하는 영화가 있어요. 그 당시 심리상태가 영향을 미친거죠. 가족 때문에 혹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면 뭔가 되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저희 작품이 최종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조창호 감독은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 이것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믿는다.”라고 영화의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영화 속 수완은 속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지만, 김재욱에겐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영혼의 친구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행운아이다. 게다가 영화 쪽 일을 하는 친구라 일적인 이야기와 사적인 이야기가 공존할 수 있는 사이다.

“아무 때고 찾아가, 제 모든 걸 말 할 수 있는 친구는 있어요. 아주 아주 오랜 인연을 이어 온 친구이고, 저와 비슷한 쪽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죠. 저랑 바라보는 지점이 비슷해요. 좋아하는 부분이나, 영화를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지점도 비슷해요. 입봉을 기다리고 있는데, 언젠가 그 친구의 작품에 제가 배우로 출연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 친구 이름이요? 그 때가서 말씀 드릴게요.”

친구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던 김재욱은 곧 “친구가 있어서 힘든 일이 생길 때 덜 힘들 순 있지만,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고 조용히 말을 읊조렸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건 분명 자기 자신이니까요.”란 말과 함께.

배우 김재욱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배우 김재욱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배우 김재욱이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훈 기자
쉽게 상처받던 20대를 지나 조금 더 둥글 둥글 해진 30대를 보내고 있는 김재욱. 그는 스스로를 “무딘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밤새 고민하는 건 있어요. 예전보다 편한 부분은 분명 있어요. 요새 많이 느끼고 있어요. 물론 기본 성향은 안 변하는 것 같아요.”라고 과거를 돌아봤다.

조창호 감독은 지난 언론 시사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영화 속 수완이 실제로 착한 사람이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김재욱이 실제로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작 당사자는 “감독님이 한 번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착한 사람’이란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누군가는 상대를 배려 해주는 사람을 보며 ‘착한 사람’이라고 칭하고, 또 다른 이는 이러한 태도를 삶을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는 “전 ‘착한 사람’ 혹은 ‘배려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상대에게 뭔가를 받았을 때보다 줬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다”고 정리했다.

“절대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절대선’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전 절대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각자마다 보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상대를 배려해주는 것? 그것 역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하는거죠. 그래서 배려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도 말을 못하겠어요.”

‘배우의 길’을 삶의 일부로 느끼고 있다는 김재욱의 행보는 늘 궁금증을 안겼다. 거대 자본이 뒷받침 된 상업 영화의 길을 따를 법도 하건만, 그는 화려한 ‘배우’라는 타이틀 보다는 늘 배우고자 하는 ‘배우의 길’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품 소식이 들려오면 늘 궁금하고 반가운 배우 중에 한명이다”고 말을 건네자, 김재욱이 웃는다. 아주 미세하게.

“그건 배우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목표 중 아닐까요. 배우 중에 싫어하는 분은 아마 없을걸요. 작품의 색이나 장르나 여러 가지를 다 떠나서 인물 하나로 보고 싶다는 건 극찬이죠. 내 결과물로 신뢰를 주고 싶은 건 배우의 바람이구요. 늘 궁금한 배우가 되겠습니다. 계속 궁금해해주세요.”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