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만남 A to Z]지친 당신을 위해 특별한 '소음'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사각사각, 스윽스윽”

화면 가득 음흉스럽게(?) 생긴 귀모양 기계를 만지는 정체불명의 손이 보인다. 여느 유튜브 영상과 달리 간혹 진행자의 입이 살짝 보일 뿐 소곤소곤 목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심지어 최소 30분에서 1시간이나 되는 의문의 소리. 최근 유튜브에서 뜨고 있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쾌락반응) 영상 콘텐츠다. 특정 상황이나 사물의 사운드에 집중해 음향효과를 극대화한 이 콘텐츠는 특히 불면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심신안정을 유도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일상의 익숙한 소리지만 들을수록 묘하게 기분 좋아지는 ‘백색 소음’을 만드는 미니유씨, 그는 마음이 힘들거나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힐링 콘텐츠로써 ASMR을 제작한다고 말한다.

서울경제썸이 국내 최초 ASMR 크리에이터인 미니유씨를 만나봤다.



국내 최초 ASMR 전문 유튜버 미니유(본명 유민정 , 29)씨 .
안녕하세요. 저는 유튜브에서 ASMR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 유튜버 ‘미니유(본명 유민정, 29)’라고 합니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란 오감을 자극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게 되는 현상 혹은 영상을 말해요. 쉽게 말해 청각 위주의 영상으로 시청자의 귀를 자극해 편안함을 주는 이른바 ‘청각 힐링 콘텐츠’죠.(웃음)



평소 명상하거나 차분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청각위주의 영상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해외 유튜버가 만든 ASMR 영상을 보게 됐죠. 아무리 재미있는 영상이라도 3분 넘기기 힘든데 음향효과만으로 30분~1시간짜리 영상에 매료되긴 처음이었어요. 한동안 계속 즐겨보다가 어느 날 문득 한국어로 된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ASMR 한국어버전을 제작하는 사람이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 한국인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콘텐츠 제작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평범한 제가 직접 ASMR 콘텐츠를 제작하게 됐죠. 2013년 9월부터였어요.



ASMR 영상을 처음 업로드 했을 때 기대와는 다르게도 정말 악플이 90% 이상 달리더라고요. 살면서 그렇게 욕을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죠. 국내서 ASMR 자체가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이 영상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왜 이런 걸 만드냐, 이게 무슨 콘텐츠냐”는 등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이 많았죠. 저도 사람인데 당연히 충격도 받고 위축도 됐죠. 그럼에도 저는 ‘이 영상을 보고 힐링 받는 사람이 분명 있을거야’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점점 제 콘텐츠를 보면서 힐링받는다는 구독자들의 호응을 받게 되면서 힘을 얻게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ASMR영상은 ‘위로 ASMR’ 이에요. 요즘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여러가지 상황별로 위로가 될 수 있는 ASMR를 만들고 있어요. 실제로 “괜찮아. 다 잘될거야”라고 계속 다독여주는 영상도 반응이 좋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ASMR은 ‘비오는 날 놀이터에서 비를 맞는 영상’이에요. 가끔 비가 엄청 쏟아지는 날이면 비 맞으면서 걷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 영상을 촬영하면서 저 스스로도 위로가 되기도 했고 마음이 개운해지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 직접 실시간으로 소통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 역시 위로를 받게 되고 뿌듯한 것 같아요.



요즘엔 구독자분들이 직접 콘텐츠 제작 요청을 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 한 구독자분이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20대 초반 여성분이었는데 오래 사귄 연인이 있었는데 실연을 당해 너무 힘들다고 위로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이별 후유증엔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안되잖아요. 정말 며칠동안 고민했죠. 그러다가 문득 상처받은 마음을 떼어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 수술’ 영상을 제작했어요. 이게 위로가 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이별 후 상실감을 느꼈던 구독자들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ASMR을 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어떻게 하면 소리만으로 몰입감을 높일까”예요. 제가 기술력은 아직도 부족하지만 저만의 노하우는 “상상력”이죠. ASMR은 소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특정 상황 혹은 분위기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의학 드라마 중 수술하는 소리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심장박동기나 흡입기 소리 등 적절한 도구의 사운드를 넣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성우나 음향효과 감독의 업무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유튜버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근무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이죠. 그래서 콘텐츠 제작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대부분 아기자기한 소품을 보러 다녀요. 또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나 일상 생활 속에서 다양한 소리를 많이 듣고 소재거리를 찾죠. 혹시 제가 보고 싶으시다면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 상가로 오세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저를 발견하실 수 있을거예요. 제 아지트거든요. (웃음)



현재 제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는 약 30만명 정도예요.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들이죠.

솔직히 ASMR콘텐츠 제작 초기엔 경제적 수입이 거의 없었어요. 유튜버들은 고정적인 월급이 없고, 콘텐츠 광고 수익으로 버니까요. 하지만 ASMR의 경우엔 소리에 집중한 콘텐츠이다보니 광고 노출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죠. 그래도 지금은 꾸준히 채널 구독자수와 조회수가 늘고 있어서 한 달에 약 200만원 정도 벌고 있어요.



제 나이가 어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던 것 같아요. 일반 기업 사무직으로도 일해보고, 방송 프로그램 작가로도 일해보고 심지어 연극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배워보기도 했어요. ASMR을 막 시작할 땐 파트타임 근무를 하면서 장비를 야금야금 구입했죠. 다양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롤플레잉 ASMR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니유씨는 “ASMR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ASMR이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미니유씨 제공
지난 해 10월 서강대학교에서 ‘TEDxSogangU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어요. ASMR소개와 일상 속 소리로 삶의 소중함에 대해 알리는 시간이었죠. 항상 많이 배우고 도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웃음)



지난 11월 미니유씨는 가족과 함께사는 거실 한켠에 ASMR 전용 미니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유창욱기자
지금 제작 중인 ASMR은 크게 롤플레잉 코너, 위로(힐링)코너, 일탈asmr 코너 등이 있어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3회 업로드하고 있죠. 주로 소재 영감은 일상에서 찾고 있어요. 촬영은 낮에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에서 찍고 있어서 가족들이 외출하는 낮시간이 좋더라고요. 촬영부터 편집까지 제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는 구독자 수를 50만명까지 늘리는 거예요. 또 ASMR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주위에서 선정성 등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 ASMR의 긍정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싶어요. 또 아직 국내엔 ASMR 관련 교육기관이나 전문적으로 이론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지식과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서 ASMR 전문 MCN을 차리고 싶어요.

ASMR은 소리에 집중하게 하면서 심신 안정을 위한 위로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지만 제 콘텐츠를 보면서 힐링받는다는 독자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ASMR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 대인기피증 등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피그말리온 효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미니 스튜디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니유씨.
요즘엔 틈틈이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 각 나라별 고유의 소리가 듣고 싶어졌어요. 제 콘텐츠가 좀 더 대중화되면 세계여행을 하며 현지에서 ‘나라별ASMR 영상’을 제작해보고 싶어요.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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