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암살범의 압수리스트-미인도와 김재규’ 편이 전파를 탄다.
91년 이래 26년간 지속돼온 미인도 위작 사건. 지난 12월 19일. 검찰은 미인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소장 이력의 확인이 아주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요약컨대 미인도는 1980년 계엄사령부가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모 씨로부터 헌납 받아 재무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 발표
1991년 4월.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였던 고 천경자 화백. 당시 미인도를 진작으로 결론 낸 국립현대미술관과 천화백측의 끊임없는 대립은 그녀가 타계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돼오고 있다. 이에 최근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내외에서 과학 감정을 진행했고, 그 결과, 서로 상반된 의견이 도출됐다. 프랑스 감정기관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위작으로, 국내 검찰과 국과수는 진작으로 발표했다.
“어머니가 얼마나 숭고한 작품 정신을 가지셨는가, 작가정신을 가지셨는가 알기 때문에. 저희에게 기념으로 (작품을) 주실 때가 있지만 다시 돌려드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작품을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러신 분인데 자기 작품을 몰라봤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 故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 인터뷰 中
“이 방식은 천화백 뿐 아니라 반 고흐나 르느와르 같은 대화가들의 작품도 작업했던 매우 신뢰성 있는 작업입니다. 미인도가 진작일 확률은 0.0002%입니다”
- 뤼미에르 테르놀로지 장 페니코 인터뷰 中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살해된 박정희 대통령. 그를 살해한 암살범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부장. 당시 신군부는 김재규에 대한 대통령 살해혐의와 별도로 그의 보문동 자택에서 고미술품, 귀금속을 포함한 고서화 1백여 점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그를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이후 김재규가 모든 재산은 기부채납형식으로 국가에 환수됐고, 그가 모은 고가 미술품 속에 1977년 작으로 표기된 천경자의 미인도가 있었다는 것.
어렵게 입수한 김재규 환수재산목록을 확인한 결과, 총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문서에는 천경자의 미인도를 포함해 총 155개의 압수 물품이 적혀 있었다. 이 문서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작성된 것일까? 제작진은 그동안 방송에 나온 적이 없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여동생 부부와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까지 그를 보필해 자택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개인 비서 최종대 씨를 만날 수 있었다. 37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미인도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고, 미인도와 김재규에 얽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오빠는) 좀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다 못한 게, 오빠 이야기를 가족들이 좋게 하지, 나쁘게 하겠나. 그리 생각을 할까봐...가까이 아는 사람들도 우리말을 다 안 믿어요. 자신들이 상상하는 건. (김 전 부장이) 부정축재를 해가지고 (집안에서) 막 금덩이가 쏟아져야 이해가 되는 거예요...”
- 김재규 전 부장 유가족
검찰은 80년도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게서 환수한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는 소장이력을 근거로 <미인도>가 진작임을 주장했다. 또한 과거 그의 보문동 자택을 방문했던 미술전문가 김 모 씨가 응접실 벽면에 걸려있던 <미인도>를 본적이 있다는 진술이 문제의 그림이 집에 있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일치한다며 <미인도> 진위에 대한 논란을 일축시키고자 했는데.
그러나 제작진과 만난 유족들과 최종대 씨는 김 모 씨의 주장을 부정하며 신군부가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응접실은 안 걸었어. 그건 사람들이 지어내서 한 이야기지. 그건 내가 직접 걸었는데. 미인도는 응접실에 내려온 일도 없어. OOOO에 걸어놨지”
- 최종대 씨 인터뷰 중
[사진=S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