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국가신용등급·지표호조에도 위기... 2016년-신용등급 비슷하지만 지표는 최악

[IMF 위기 데자뷔 꼭 닮은 1997-2017]
20년전 한보 무너지면서
국가신용·환율 등 '휘청'
성장·내수 살얼음판 속
올 트럼프 등 악재 넘쳐

1996년-국가신용등급·지표호조에도 위기... 2016년-신용등급 비슷하지만 지표는 최악
지난 1997년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자료를 읽고 있다. 그해 1월 한보철강의 부도는 한국 기업의 뿌리 깊은 정경유착 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며 IMF 외환위기의 서막을 열었다. /연합뉴스
1996년-국가신용등급·지표호조에도 위기... 2016년-신용등급 비슷하지만 지표는 최악
한보철강이 무너지기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1996년 10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이유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 ‘A1’인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2’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달여가 지난 11월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무디스가 정부의 요청보다 한 단계 낮은 ‘Aa3’로 신용등급을 올릴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앞선 1995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격상시킨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실제 거시지표는 나쁘지 않았다. 1996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7.6%. 1994년(9.2%), 1995년(9.6%)보다 다소 둔화했지만 위기를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민간소비(7.6%)를 비롯해 기업 설비투자(9.6%), 건설투자(7.3%)도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한승수 당시 경제부총리가 1997년 신년사에서 “올해는 개혁·개방을 완성시켜야 하는 해”라고 말한 것도 당시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이 같은 거시지표의 호조는 물가(4.9%)와 경상수지 적자(-238억달러), 그리고 단기외채(외환보유액 대비 211.4%), 고용불안 등에 대한 우려를 덮었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이 같은 한국 경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180도 바꾼 사건이었다. 당장 외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외채 망국론’이 고개를 들었다. 1994년 OECD에 가입한 후 그해 12월 외환위기를 겪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멕시코 꼴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상향을 저울질하던 무디스는 한보 사태 이후 국내 금융기관의 등급을 오히려 강등시켰다. 이후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난 뒤 S&P를 시작으로 무디스·피치 등도 줄줄이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깎아내렸다. 연초 800원대 중반이던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12월에는 1,500원에 육박했다.

1996년과 2016년의 국가신인도는 비슷하다. 2015년 12월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전체 21개 등급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일본(A1)보다도 두 계단 위다. 지난해 8월에는 S&P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무디스와 같은 단계인 ‘AA’로 한 계단 높였다.

하지만 실물지표는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늙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2.7% 성장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10.9% 증가한 건설투자가 성장률 절반을 떠받쳤다. 내수 침체로 소비자물가는 1% 상승하는 데 그쳤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985억달러), 낮은 단기외채 비율(외환보유액 대비 29.6%), 충분한 외환보유액(3,711억달러)이 그나마 외부 충격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지만 트럼프노믹스가 시동을 걸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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