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3일’ 용산 인쇄소 골목 72시간, 청년 자영업자가 골목을 만났을 때



22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청년 자영업자가 골목을 만났을 때 - 용산 인쇄소 골목 72시간’ 편이 전파를 탔다.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서울 시내 한복판. 용산구에는 옛날과 요즘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골목이 있다. 시장 골목에서 시작해, 한때는 인쇄소 골목으로 명성을 떨쳤던 곳. 그러나 땅값이 너무 오른 탓에 재개발이 중단된 지 몇 년 째. 거리는 지나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황량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어둡고 조용해 보이는 골목에 상상도 못한 재미난 가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동시에 여섯 개 음식점의 문을 열면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젊음의 거리인, ‘열정도’로 새롭게 거듭난 것. 가게들 사이사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집들도 그대로 남아있다.

삭막한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청년들의 밝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열정이 불타오르는 섬 같은 골목에서 펼쳐진 생기 넘치는 3일 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쇄소 골목은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로 점심시간부터 활기를 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본격적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골목. 그런데 음식점 사이사이에는 이질적인 공간들도 존재한다.

후미진 골목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외관의 옷가게. 번화가에서나 볼 법한 옷가게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항상 불이 켜있다. 거기에 만화책과 피규어로 가득 찬 수상쩍은 사무실까지. 무심결에 지나가던 방문객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고야 만다.

“낡아서 음침한 느낌은 있었는데 저희가 한 번 상상을 해봤어요. 여기 한 가운데 이런 예쁜 느낌의 가게를 한번 내면 골목 자체가 재밌어지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요”

- 박정아(38)

창업 열기를 따라 발을 들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골목길. 장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당찬 면모의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군 전역을 앞두고 받은 마지막 휴가를 고깃집에서 보내고 있는 말년 병장 서병규 씨도 그 중 하나다. 일의 강도가 군대 유격 훈련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며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병규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는 순간만큼은 그래도 행복하니까. 그걸로 버티는 거죠”

- 서병규(23)

마찬가지로 2년 전, 교육생의 신분으로 골목에 입성했던 박청미 씨. 지금은 어엿한 한 가게의 점장이 됐다. 지금은 곱창집 메뉴 개발에도 참여해 품평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살면서 학교만큼이나 많이 왔던 곳이 여기라서 거의 고향 격이죠. 눈뜨면 여기 와서 손님들하고 놀고 일하다가 집에 가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더 집중해서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 박청미(28)

인쇄소 골목은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찾아온 청년들로 가득하다. 의욕 충만한 동생들을 위해 올해 나이 29살의 김운석 씨는 골목 안에서만큼은 최고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저 이제 4년차 됐습니다. 4년이면 사실 어디가면 막내죠. 일반 회사면 아직 대리고 막내 정도일 텐데, 여기서는 어떻게 하다보니까 제가 제일 연장자이자 형이자 점장입니다”

- 김운석(29)

쭈꾸미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현우 씨. 오픈을 앞둔 곱창집 점장을 맡으며 꿈으로 성큼 다가섰다. 누구보다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그가 이끌어 갈 가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저는 은수저, 금수저는 생각도 못 하고, 흙수저도 안 돼요. 근데 지금 사회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운 것 같아요. 노력 안 하는데도 부모님 잘 만나서 좋고 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그건 개인 가치관에 따라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서 노력하면 된다고 저는 아직까지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김현우(26)

골목에 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서로 다른 듯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기운 가세에 보탬이 되고자 골목의 휴일인 일요일에도 카페 문을 열게 된 커피 로스팅 업체 직원 이한석 씨. 모델이라는 꿈은 포기했지만, 인디 가수들에게 카페를 빌려주며 어릴 적 소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살다보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도 많잖아요. 부모님이 가게를 해줬다더라, 부모님 힘을 빌어서 뭔가 해나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전 또 저의 길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 이한석(32)

골목 사이에 나있는 외진 길을 따라 가보면 만날 수 있는 은밀한 공간. 김기정 씨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위스키 바다. 그가 바라던 대로 손님들과 함께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지금 김기정 씨는 또 다른 꿈을 꾸는 중이다.

“사람이 없고 해가지면 무서웠던 공간인데 지금은 많이 왁자지껄해지고 산책하는 분도 늘어났어요. 이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일단 꿈 꿨던 거는 여기까지였어요. 이제 그 다음 단계의 꿈을 상상할 때가 됐죠”

- 김기정(34)

[사진=K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