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새출발 앞둔 우리은행에 바라는 것

정영현 금융부 차장



금융권 취재를 맡은 후 한동안 놀라웠던 점 중 하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상호 간에 출신 학교와 학번·고향을 꽤 스스럼없이 물어보는 문화였다. 물어보기도 전에 사전 조사를 통해 서로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학연·지연·혈연이라는 것이 폐습으로 불리면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의 이면에서 이너 서클을 단단히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금융권에서 유독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 금융권 인사들에게 ‘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대부분 “글쎄요”라는 답을 돌려줬다. 어떤 이는 고심 끝에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에는 경쟁사 간에 차별화되는 상품을 내놓기가 쉽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을 만들어 팔다 보니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아 결국 인맥으로 차별화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나름의 분석적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정답은 아니고 개인적인 궁금증도 명확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저 몇 번의 금융권 인사를 지켜보면서 인맥이라는 것이 금융권에서는 인사의 맥락으로 상당히 의미 있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을 뿐이다.


요즘 금융권 안팎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우리은행 차기 행장 찾기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부 공모임에도 차기 행장에 도전한 지원자가 두 자릿수에 이르자 우리은행 주변에서는 지원자들의 출신 고향, 출신 학교에 더해 최초 입사한 은행까지 따지고 들고 있다. 어느 후보자가 정권의 실세와 친하다든가 관례상 합병 전 특정 은행 출신이 차기 행장 순번이라는 식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출신 배경이라는 것이 이미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간 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윤활유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은행의 현재는 물론 다가오는 미래를 가장 오랫동안 함께할 젊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출신 배경이라는 것은 결국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제일 듣기 싫어 하는 ‘부모님이 누구니?’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만으로 온전히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인 만큼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 직원들에게는 좌절감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우리은행은 118년 역사의 ‘우리나라 은행’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은행 역할을 했고, 광복 후에는 경제 성장, 산업 발전기에는 수출 산업을 도왔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지난 20년간은 파란만장한 한국 경제사의 모든 힘든 순간을 같이했다. 그 역사 끝에 지난해 마침내 민영화에 성공해 그간 은행 발전을 막던 족쇄를 풀고 새 도약에 나설 수 있는 출발선 앞에 가까스로 섰다. 행장 인사 문제도 완전히 새 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 우리은행은 물론 금융권 전체에 있어서도 인맥 인사가 아닌 실력 인사가 작동하는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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