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 툴젠 대표 인터뷰/권욱기자
김종문 툴젠 대표 인터뷰/권욱기자
지난 1992년 IBM에 다니던 김종문 툴젠 대표는 문득 자신이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33세의 나이에도 보수는 국내 기업 임원 못지않았고 카펫이 깔린 고급스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매일 호텔에서 회식을 했다. 하지만 환경이 조금 열악하더라도 도전적인 일,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결국 사표를 쓰고 이듬해 국내 정보기술(IT) 벤처 업계에 뛰어들었다. 도전은 1996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삼보컴퓨터와 한국전력이 주축이 된 ‘두루넷’의 창업 멤버로 참여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분야를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통신사, 방송국에서만 쓰던 광케이블 네트워크를 민간에 싸게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를 청와대와 당시 정보통신부, 기업들을 뛰어다니며 설득했고 1998년 초고속 인터넷을 민간에 보급하는 데 성공했다. 두루넷은 이런 성공을 발판 삼아 다음 해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직상장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김 대표도 두루넷 관계사인 ‘넷포인트’의 대표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서 눈을 돌린 분야가 바이오였다. 그는 “바이오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관련된 산업이고 새로운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어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2008년 툴젠 창업자인 김진수 서울대 교수의 ‘유전자 가위’ 강의를 듣고 ‘이거다’ 싶었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만을 잘라 교정함으로써 난치병 치료, 동식물 품종 개량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기술이다. 이후 김 대표는 2011년 김 교수의 제안을 받아 현재까지 툴젠을 이끌고 있다.
IT 업계에서의 성공과 비교한다면 현재 툴젠의 위치는 ‘꽃길’보다는 ‘흙길’에 가깝다. 툴젠은 전 세계를 통틀어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 원천기술을 보유한 네 곳 중 한 곳이지만 아직 코넥스 상장사에 불과하고 연 매출도 10억~20억원 수준이다. 크리스퍼를 이용한 제품 상용화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툴젠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낼 비전과 확신이 있다”며 “올해부터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하나둘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연구용 동물과 품종 개량 식물 분야에서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매출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툴젠은 유전자 교정 실험 쥐(rat)와 생쥐(mouse), 돼지를 만드는 데 이미 성공했다. 이 가운데 생쥐와 돼지는 여러 글로벌 업체들과 기술 수출을 협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레인산이 많이 함유된 콩, 전분 함유량을 다양화한 감자, 병충해에 강한 사과·포도 등도 개발을 마치거나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올해 말부터 해외 시장에서 매출을 내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신약 개발은 긴 호흡으로 보고 있다. 신약 개발에는 워낙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만 혈우병·황반변성 치료제 등은 올해 전임상을 마치고 내년 본격적인 임상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에이즈 치료제는 다른 제약사와 공동 개발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임상시험 전 인간 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95%의 치료 효과를 보였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김 대표는 “회사의 매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공유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일례로 그는 품종 개량 식물을 대중화시켜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 대표는 “툴젠을 국가 경제를 이끄는 세계적 기업으로 올려놓을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