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기업 AIIB사업서 배제될 판]美부패방지법 이어 수주 직격탄...뇌물낙인에 기회의 땅 놓치나

법원최종심까지 2~3년...年150억弗사업 진출길 막혀
포스코·KT 등 인프라사업 연관성 깊은 기업들 직격탄
"중국이 사실상 결정권...사드배치도 변수 가능성" 주장도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건물. AIIB는 뇌물 등 부패기업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의 기업에 대한 수사의 칼날이 예리해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한 것은 비단 총수들의 영장 청구 여부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부패 기업으로 낙인 찍혀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될 경우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올 게 뻔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조마조마했다. 특히 미국 사법당국이 외국 부패 기업에 강력한 벌칙을 가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적용 대상으로 삼을 경우 해당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울경제신문의 확인 결과 기업 수사의 파장은 미국뿐만 아니라 사업을 영위 중인 글로벌 국가 전반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우리 대기업들이 ‘신(新)엘도라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가 아예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

중국 주도로 지난 2016년 1월 설립된 AIIB는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을 대상으로 도로·전기·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깔아주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부패·뇌물에 연관된 해외 기업은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을 포함한 우리 대기업 53곳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74억원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 수사에 이어 법원 최종심까지는 앞으로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뇌물혐의를 받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AIIB 초기 프로젝트에 아예 참여할 수 없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극심한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글로벌 사업기회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인지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는 셈이다.

◇AIIB 사업서 참여 배제 가능성…미국 부패방지법 이상 타격 우려=글로벌 기업들은 AIIB 프로젝트를 새로운 먹거리 창출기회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에 맞서 중국은 AIIB를 미국 경제패권의 대항마로 육성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AIIB는 지난 한해 동안에만 총 9개 프로젝트에 17억달러 이상을 융자했다. 운영 규모를 점차 늘려나가 앞으로 5년 이내에 연간 융자 규모를 100억~150억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들은 먼 산만 바라보는 형국에 빠질 수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774억원의 출연금이 뇌물혐의를 받고 있어 53개 대기업이 AIIB 프로젝트에 아예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IB는 파이낸싱을 받는 전제조건으로 기업의 부패행위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래 상대방은 최고의 청렴의무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대 조건도 달고 있다.

10대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AIIB는 사기와 부패 행위에 연루된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2~3년간 재단출연금 성격을 놓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AIIB 사업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우리 기업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우리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파장에 대해 분석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AIIB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했던 대기업들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사업 참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토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SK건설과 도로공사 컨소시엄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에 참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AIIB 측으로부터 별다른 소식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와 연계할 가능성도 제기=우리 대기업들이 우려하는 또 다른 요인은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와 AIIB 사업 참여를 연계할 것인지 여부다. 중국으로서는 사드 배치 이유를 직접 내세우지 않고 우리 대기업의 뇌물혐의를 이유로 사업 참여를 배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주요 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있고 AIIB가 50개 이상의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사드 배치 여부가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AIIB 설립을 주도한 중국이 최대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사드 배치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대기업의 경우 뇌물혐의에 더해 사드 배치 문제까지 겹쳐 AIIB 프로젝트에서 불이익을 당할 위험도 있다”며 “앞으로 AIIB 프로젝트 진행이 본격화되는 점을 감안해 정부와 대기업들이 철저하게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AIIB가 추진하는 인프라 사업과 연관성이 깊은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포스코·KT·삼성물산·SK종합화학·GS건설·두산중공업·대림산업·LS전선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LG화학·호텔롯데·한화·아모레퍼시픽 등 다른 기업들도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AIIB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갖고 있다.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은 낙하산으로 AIIB 부총재가 됐지만 산은 회장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부실 책임 등이 논란이 돼 부총재에 오르지 못했다. 프랑스가 자리를 대체했다.

/서정명·이태규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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