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인종 차별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2014년 4월 28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바르셀로나 팀과 비아레알 팀의 경기 도중이었다. 다니엘 알베스가 코너킥을 차려는 순간 관중석에서 바나나가 날아왔다. 바나나는 인종 차별을 상징하는 과일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너는 원숭이처럼 구경 거리밖에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바나나 세례였다. 종종 유색 축구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모욕 행위였다. 관중들은 노골적인 인종 차별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숨을 죽이고 다니엘을 지켜봤다. 그 순간, 다니엘이 태연히 바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무는 게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너무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까지 지으면서. 사실 이 사건은 계획된 연출이었다. 광고 제작자 구가 케처가 인종 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연출한 것이다. 이후 이 캠페인은 여러 스타 축구 선수들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 냈고, 급기야 이탈리아 총리와 교황까지 이 캠페인에 동참하여 바나나를 먹으면서 인종 차별 반대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
마케터로서 이 사건은 매우 흥미로웠다. 계획된 연출이라는 사실에 통쾌한 기분까지 느꼈다. 특히오랜 시간 가슴 속 깊이 남았던 것은 기획자 구가 케처의 말이었다. “편견에 대처하고 악습을 근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가 노리는 피해자의 아픔을 제거하는 것이다.”
관중이 던진 바나나를 집어먹고 선전한 다니엘의 모습에서 인종주의자들이 원하는 모욕감이나 불안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적수가 노린 아픔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나의 행복 결정권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와 같은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종종 있다. 이상하게 나만 미워하는 듯한 상사,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게 철저히 봉쇄하는 선배, 교묘하게 말을 전함으로써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후배.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특정한 상황에서 나를 공격한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할까?
상황이 어려울수록, 내가 궁지에 몰릴수록,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냥 기다려서는 안되고 나를 관리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나는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열정도 높다. 그런데 이번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배제됐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옆자리 김 과장의 ‘펌프질’이 팀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당장 가서 따지고 싶지만 심증만으로, 루머만으로 덤빌 수도 없다. 제대로 판단하지 않은 팀장도 원망스럽고, 김과장의 교묘함이 정말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방법으로 김 과장을 물 먹이고 싶지만 적당한 계기도 없다. 몸이 아파 회사를 떠나기라도 해줬으면 좋으련만, 이런 기도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내가 궁지에 몰릴수록,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냥 기다려서는 안되고 나를 관리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우선 내게 주어진 이 상황에서 김 과장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나의 실망, 분노, 억울해 하는 모습,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 심지어 정의를 실현해보겠다며 엉뚱한 곳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 등이 아닐가. 한마디로 내가 ‘아파하는’ 모습일 것이다. 일단 그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다시 비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천천히 생각할 일이다. 세상 일은 돌고 도는 법, 기회는 반드시 온다. 당장은 상대방이 원하는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무척 하고 싶은 프로젝트였는데, 기회가 오지 않아 아쉽네요. 하지만 이 기회에 미뤄뒀던 다른 프로젝트를 추진해야겠네요. 그 프로젝트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 기대가 큽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식 멘트는 딱 여기까지다. 내게 남은 잉여 감정의 치유는 베스트프렌드를 붙잡든, 남자친구를 닥달하든, 안전한 타인에게 충분히 쏟아내면 된다. 단, 회사에서는 표정이나 말투, 행동, 그 어느 면에서도 힘들어 하거나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안 된다.
밤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진다는 진리를 믿자.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동굴이 아닌 터널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자. 지옥은 나 스스로 만드는 것, 미래에 발생할 일까지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그 일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myoungwha.choi00@gmail.com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마케팅 컨설턴트, LG전자 최연소 여성 상무, 두산그룹 브랜드 총괄 전무를 거쳐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상무를 역임했다. 국내 대기업 최고 마케팅 책임자로 활약한 마케팅계의 파워 우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최명화&파트너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국내외 기업 마케팅 컨설팅 및 여성 마케팅 임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인 CMO(Chief Marketing Officer)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조직에서 스마트하게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장 전략서 ‘PLAN Z(21세기북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