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소비가 짓눌리고 있지만 부호들의 씀씀이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 시중금리 오름세, 소비심리 악화 등으로 전반적인 소비가 위축되고 있지만 고소득층만은 무풍지대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돈을 쓰는 환경을 만들어 경기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까지 소득 상위 10% 가정(전국 2인 이상 기준)은 한 달 평균 465만 6,000원을 썼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명목 기준) 증가했다. 반면 전체 가정의 소비액은 258만 1,000원으로 0.4% 증가에 그쳤다. 소득 하위 10% 가정은 108만 4,000원을 써 지난해보다 오히려 0.4% 줄었다.
한 달에 400만원 이상씩 쓰는 가정 비율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상황이다. 소비 통계 상 최고 구간인 한 달에 400만원 이상 쓰는 가정의 비중은 3·4분기 현재 9.9%로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3·4분기 기준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 최고 기록은 2012년의 9.91%다. 반면 한 달에 100만원도 안 쓰는 가구는 13.01%로 금융위기 이후(2009년 3·4분기 14.04%)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부유층은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소득이 비교적 빠르게 늘며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 있다. 반면 최근 거세지는 구조조정으로 일용직 근로자의 실업이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 업황도 급격히 얼어붙어 저소득층은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지난해 3·4분기 현재 4.81배로 지난해 같은 기간(4.46배)보다 올랐다. 지표는 수치가 높을수록 빈부격차가 커진다는 의미다. 3·4분기 기준으로 2013년(5.05배)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소비가 짓눌리고 있다고 하지만 부유층은 소비를 할 여력이 있고 실제 하고 있다”며 “결국 이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돈을 쓰게 해야 경기회복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유층의 국내 소비 확대→기업 매출 증가→취약계층 고용 및 투자 확대→경기 전반 회복의 선순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부호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각종 프리미엄 서비스, 사치재에 붙는 개별소비세 축소 등의 정책을 펴려고 해도 중산층을 중심으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아 정책 입안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그 사이 이들은 계속 해외에서 돈을 쓰면서 국내 경제는 하방압력을 받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