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킹’의 메피스토펠레스 배성우 ① “양동철은 의리의 아이콘이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는 파우스트 박사의 앞에 나타나 영원한 젊음과 부, 그리고 권력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그 댓가로 메피스토펠레스가 받아가기로 한 것은 바로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이었다.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던 파우스트 박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이 제안을 결국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

18일 개봉해 인기리에 상영중인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에서 박태수(조인성 분)와 양동철(배성우 분)의 관계는 독일의 유명한 구전설화이자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로도 잘 알려진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배우 배성우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한낱 양아치에 불과했던 박태수(조인성 분)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아버지가 일개 검사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을 보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검사가 됐지만 박태수는 검사의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화려함이나 권력과 거리가 멀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그의 앞에 대학선배이자 검사 선배인 양동철(배성우 분)이 나타난다.

배성우가 연기한 ‘양동철’은 ‘박태수’에게 메피스토펠레스나 다름없었다. 그는 영원한 젊음 대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쥐어주겠다며 박태수를 유혹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댓가로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가져가려 했지만, 양동철은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박태수에게 한강식(정우성 분)과 줄이 닿아있는 지역유지 아들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을 무마해달라며 검사로서의 양심과 영혼을 팔 것을 요구한다.

사실 ‘더 킹’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배성우가 연기한 ‘양동철’이기도 하다. 양동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채 승승장구하던 박태수는 최두일(류준열 분)의 폭주로 인해 권력의 중심에서 쉽게 밀려나지만, 양동철은 그 가운데서도 끝내 한강식의 옆에 붙어서 마지막까지 권력의 단 맛을 누린다. ‘더 킹’의 이야기는 한강식(정우성 분)과 박태수(조인성 분)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 옆에서 존재감 없이 권력의 단 맛을 빼먹는 ‘양동철’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일지 모른다.
영화 ‘더 킹’ 배성우 / 사진제공 = NEW



“사실 양동철이야말로 의리의 아이콘이죠. 나중에는 한 번 쯤 덮어쓸법도 한데, 끝내 한강식 옆에 붙어 있거든요. 사실 ‘양동철’은 보이는 모습과 상당히 다른 인물이에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계속 기득권층에 붙어 있는 인물이잖아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태수는 그런 한강식이나 양동철이 보기에는 이방인 같은 존재인거죠. 양동철은 한강식처럼 검사로서 설계를 하는 능력은 없지만, 그런 능력이 없기에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따라 정치적으로 라인을 잡고 가는 현실적인 인물이에요.”

배성우의 말처럼 ‘양동철’은 극적인 요소가 포함된 ‘한강식’이나 ‘박태수’에 비해 가장 현실적일 수 있는 캐릭터다.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떨어지는 고물을 충실하게 주워먹는, 그래서 더욱 무섭고 소름끼치는 인물이다.

배성우의 이런 캐릭터는 ‘박태수’를 대하는 두 번의 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인성과의 첫 만남에서는 능글맞게 웃으며 “태수야, 내가 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을까?”하며 살살 비위를 맞추지만,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조인성이 찾아온 장면에서는 뱃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발성까지 동원해 “한 번 밀려났으면 그냥 눈치껏 옷 벗고 찌그러져 살아”라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한다. 상대의 입장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변하는 모습. 그것이 배성우가 연기한 ‘양동철’의 소름끼치는 진실이다.
배우 배성우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한재림 감독이 저와 ‘양동철’이 닮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평소 제 모습을 알고 있는 한재림 감독이 놀 때는 화끈하게 놀고, 평소에도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제 모습에서 ‘양동철’의 평소 이미지를 가져왔다는 말이에요. 저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양동철’은 굉장히 권위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에는 깍듯하지만 아래에는 권위적인. 그런데 한재림 감독이 현장에서 조인성을 대할 때 평소 제 모습처럼 친절하게 대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야 나중에 제가 조인성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할 때의 낙차가 더욱 커질 것 같다고.”

‘더 킹’에서 배성우의 마지막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강식(정우성 분)에게 버림받은 박태수(조인성 분)가 안희연 검사(김소진 분)과 손잡고 한강식에게 배운 그 방법으로 한강식에게 복수를 하며 한강식을 무너트리는 순간에도, 양동철(배성우 분)은 특별한 복수를 당하는 대신 한강식의 몰락과 함께 알아서 무너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양동철’의 후일담은 지난 2014년 화제가 된 한 검사장의 음란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금수저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만나면 정작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한강식이나 양동철처럼 일처리를 거침없이 해오던 사람일수록 이런 위기를 느껴본 경험이 없는거죠. 그럴 때 뭔가 내면에서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이런 어이없는 일탈도 저지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양동철은 검사집단의 중추이자 누가 봐도 승승장구하던 사람이잖아요? 이런 사람이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정상적으로는 이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거죠. 이것이 바로 무너져 내리는 지식인, 혹은 권력자의 모습인거죠.”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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