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검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한 방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글로벌 기업 총수에게 직권남용죄보다 무거운 뇌물죄를 적용할 때는 뭔가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이러한 발언에 오히려 의아해했다. 자신감으로 포장한 발언 이면에서 불안감을 감지한 것이다. 특검이 여론전에 나섰다는 점도 평소와 달랐다. 전날 영장을 신청한 뒤 “국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에서도 느끼지 못한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
19일 오전4시50분 기자의 의구심은 현실로 드러났다. 결정적 한 방도 없었던 셈이다. 뇌물 수수자를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여자를 구속하겠다는 전략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을 두고 특검은 홍역을 치렀다. 특검팀 검사들의 반대에도 박영수 특검이 무리하게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명심(功名心·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마음)이 특검호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과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당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구속했던 경험을 내세워 정의감과 의욕만으로 무리하게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박 특검은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이를 신청하지 않을 수 없는 구도로 뇌물 프레임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참에 삼성의 정경유착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여론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의도와 달리 특검 수사에 차질을 초래했지만 박 특검의 판단을 질책할 수는 없다. 예단하기에도 아직 이르다. 특검 수사의 최종 목표가 박근혜 대통령인 만큼 대통령 직접 조사를 앞두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면 된다. 수사 결과로 말하면 될 것이다.
영장을 담당했던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촛불 민심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소문과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앞서 특검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과연 법원이 촛불 민심을 무시할 수 있겠느냐’며 여론에 편승하는 결과를 예측했다. 하지만 조 부장판사를 잘 아는 법원과 검찰 관계자들은 그가 법과 원칙에 따라 기각 결정을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조 부장판사는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도 공명심(公明心·사사로움이나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고 명백한 마음)에 따른 결론을 내놓은 셈이다.
이번 이 부회장 영장심사는 기자에게 일시적인 공명심(功名心)과 원칙을 따르는 공명심(公明心)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다가왔다. 김성수 사회부 차장/s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