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이어 헌법재판소장도 권한대행 체제로 접어든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퇴임 이후 탄핵심판을 이끌어갈 8인 재판관들은 법리 검토와 함께 심판 지연으로 인한 ‘식물 헌재’ 상황을 막아야 할 과제를 함께 안게 됐다.
헌재는 31일 박 소장의 퇴임을 기점으로 다음 달 1일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기일부터 소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한다. 우선 10차 변론기일은 임시 권한대행인 이정미 재판관이 진행하며 이후 일주일 이내에 재판관들이 정식 권한대행을 뽑게 된다. 헌재 안팎에서는 최선임이면서 헌재 소장 권한대행 경험이 있고, 이번 탄핵심판 초반부터 수명재판관으로서 기록을 꼼꼼히 살폈던 이 재판관이 권한대행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헌재의 권한대행 체제 전환과 동시에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사실상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현재 채택된 탄핵심판 증인은 모두 15명으로 오는 2월9일까지 9명의 증인 신문 기일이 잡혀 있다. 재판부가 증인을 추가로 채택하지 않는다면 2월 중순께 증인 신문은 마무리된다. 결정문 작성과 검토에 약 2주의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후반까지는 모든 변론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박 소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25일 퇴임 전 마지막 변론기일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13일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는 박 대통령 측의 초강경 대응이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는 25일 박 소장의 일정 제시가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대리인 총사퇴 가능성 내비쳤다. 총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박 대통령은 새로운 대리인단 구성과 이후 기록 검토 시간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이 시간 동안 탄핵심판은 사실상 중단된다.
법조계에서는 이와 관련, 대통령은 사인(私人)이 아니어서 반드시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고 헌재가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으로도 심리를 종결할 수 있다는 의견과 현실적으로 변호사 없이 사건을 진행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행여 심리 기간이 길어져 3월13일을 넘어갈 경우 식물 헌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헌재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최소 정족수가 7인이기 때문에 7명 재판관 체제에서는 단 1명의 사고나 부재가 발생하면 헌재 기능 자체가 멈춰버리게 된다. 박 소장이 7인 체제를 “헌법적 비상상황”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권한대행 체제를 맞은 8인의 재판관들은 법리 검토와 함께 탄핵심판 지연 상황에 대비한 방책도 함께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통령 대리인단 총사퇴와 함께 박 대통령 본인의 출정, 증인 재신청 등도 탄핵심판 지연 변수로 꼽히고 있다.
재판관들도 현재 헌재의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재판관은 설 연휴를 반납하기도 했다. 이 재판관은 연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 헌재로 나와 사건을 검토했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도 설 당일을 비롯한 연휴 내내 헌재로 출근해 탄핵심판 후반부를 준비했다. 박 소장이나 다른 재판관들도 간간이 연휴 중 헌재로 출근했으며 자택에서도 기록 검토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관들은 연휴가 끝나는 31일 재판관 회의를 열고 증인 채택과 기일 지정, 신속 진행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헌재는 31일 오전 헌재 대강당에서 박 소장의 퇴임식을 진행한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