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관계자는 31일 “총수 일가 지분과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대기업 계열사 전체에 대한 서면 실태점검 후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혐의가 드러나면 현장조사를 거쳐 제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 거래 비중이 큰 곳이 주요 타겟이 되며,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업 스스로 잘 알고 시정 하리라 보는데 시정 했더라도 시정 전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4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5개 대기업 총수 일가 계열사에 대한 조사에 나서 현대그룹·한진·CJ 총수 일가를 제재했고 상반기 내 한화와 하이트진로에 대한 제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분이 100%인 곳이면서 신생회사가 대상이었기 때문에 관련 매출액 규모가 작았고 이에 근거한 과징금도 적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을 높이거나 계열 분리된 총수 친족회사를 포함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공정위의 이번 실태점검 대상은 대기업집단 기준 상향 이전 기준인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계열사 중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다. 대기업집단 기준이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올라갔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5조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방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이에 해당하는 대기업집단은 삼성·현대자동차·LG·롯데 같은 10대그룹을 포함해 중흥건설·셀트리온·카카오 등 비교적 작은 집단까지 39개이며 계열사는 141개에 달한다.
또 한진과 CJ 등 지난해 제재를 받은 기업도 실태점검 대상에 포함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파악하기 위한 거래추이를 보기 위해서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이 일정 이상이면 과거 제재 여부와 상관없이 점검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회사 중 총수 일가 지분과 내부거래 비중이 모두 높은 대기업집단으로는 GS그룹의 승산과 GS, 태광그룹의 세광패션과 티시스,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 SK그룹의 SK, LG그룹의 LG, 중흥건설그룹의 중흥건설과 시티건설 등이 있다. 이들 회사는 총수 일가 지분이 적게는 24%에서 많게는 100%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41~100%에 달한다.
지난해 새로 일감 몰아주기 감시 대상이 된 대기업집단 계열사도 해당될 수 있다. 금호그룹의 금호아시아나·아시아펀드, 효성그룹의 갤럭시마이크로페이먼트·디베스트파트너스·더클래스효성·신성자동차, 롯데그룹의 SDJ·롯데액셀러레이터, GS그룹의 경원건설이 대상이다. 그 밖에 효성그룹의 계열사 중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는 현재 공정위가 총수일가 부당 지원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자산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 대기업집단에는 계열사 부당지원 금지 규정에 근거한 제재만 적용한다.
부당지원 금지는 타 회사와의 경쟁을 제한할 정도의 규모여야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보다 제재가 어렵다. 그러나 여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하는 법 개정안에 대해 큰 틀에서 이견이 없기 때문에 법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 통과 전 과도기에도 이상징후가 있다면 면밀하게 혐의를 포착해 부당지원으로 엄격히 제재하고 법 통과 이후에는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법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원칙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가 발견되면 엄정하게 조치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일가 지분이나 내부거래가 높다고 무조건 제재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일반 거래보다 과도하게 좋은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졌다면 제재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과도하게 좋은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내놓은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가이드라인은 기업들이 빠져나가기 어렵게 규정돼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많은 대기업집단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총수 일가 소유 계열사를 선택한다. 그러나 공정위 가이드라인은 경쟁절차를 거쳤더라도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가까운 장래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총수 일가 회사에 제공하는 일도 금지된다. 사업양도 등 적극적인 행위뿐 아니라 유망한 사업기회를 대기업 계열사 스스로 포기하는 소극적인 행위 또한 제재 대상이다.
그 밖에 효율성·보안성·긴급성을 이유로 한 예외도 천재지변이나 해킹 등 엄격한 조건에서만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