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 빚 눈덩이인데 재정건전화법은 하세월

정부가 직간접으로 보증하는 채권인 국채와 특수채 발행잔액이 900조원을 돌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특수채의 발행잔액이 각각 581조원, 337조원으로 모두 918조원에 달했다. 이 액수가 900조원을 웃돈 것은 처음이다. 10년 전인 2006년의 366조원과 비교하면 2.5배 늘었는데 특히 특수채가 108조원에서 3배 넘게 급증했다.


국채는 말 그대로 정부 보증채권이고 특수채도 정부가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정부 부담이어서 발행잔액은 국민이 나중에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그만큼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정부가 추경이나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면서 세수확충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국채나 특수채 발행을 남발한 탓이 크다.

앞으로 정부가 경기부진을 타개한다며 추경 카드를 또 꺼낼 경우 국채발행은 더 늘어나고 그에 따라 나랏빚도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국가채무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에 따르면 정부의 실제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가 지난해만도 20조원을 넘은 상태다.

이런데도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나랏돈 지출을 법으로 억제하는 재정건전화법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보름 전 소관 상임위에서 한차례 심의한 게 전부다. 특히 개헌이나 조기 대선 등 정치변수에 밀려 국회의 관심사에서 더 멀어지는 모양새다. 대권 놀음에 휩쓸려 법안에 대한 관심 자체가 높지 않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아무리 대선이 코앞에 닥쳤더라도 나라 곳간은 챙겨야 하는 게 국회의 책무 아닌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