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통신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의 미국 가전공장 건설 가능성을 2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에서 다뤘다. 하지만 이 소식통은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투자금액이 얼마나 될지 등 세부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공장 설립 계획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지금까지 17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을 포함해 이미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한 뒤 “미국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신규 투자의 필요성이 있는지를 계속해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글을 올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멕시코·캐나다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마저 재협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 법인설립 등기까지 마친 기업이 당초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있고 이미 멕시코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기업들은 고율관세에 미국 수출길이 막히지 않을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좋은 실적을 기록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애플 아이폰의 조립회사이자 대만을 대표하는 전자업체인 폭스콘은 벌써 최대 70억달러(약 8조원)를 들여 미국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삼성과 LG는 각각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수입에 일정 수준의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이들 기업이 각각 1·2위를 기록하며 70%가량의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딴지를 걸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까지 1조원을 투자해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멕시코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 철강업계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5월 기아차 멕시코 공장 인근에 4,400만달러를 들여 스틸서비스센터를 준공했다. 하지만 NAFTA 재협상으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가 붙는다면 강판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도 멕시코 현지에 자동차용 강판으로 쓰이는 아연도금(CGL) 강판 생산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물량 대부분을 멕시코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데 이들 완성차 업체의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생산물량을 조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기업들의 고민은 신규 공장 설립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LS그룹 계열의 전장부품 업체인 LS오토모티브는 미주 수출량 증가에 맞춰 지난해부터 멕시코 생산법인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멕시코 상업등기소에 법인설립을 위한 등기까지 마치고 274억원을 투자해 2018년부터 공장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멕시코 법인설립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대신 미국 공장 설립을 저울질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KOTR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 중소기업들의 미국 생산법인 설립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대한 국경세 35% 도입 등의 압박성 발언을 하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이 미국 생산법인 설립 방법과 절차에 대해 문의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 안팎에서는 미국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더라도 3~4년이 소요되는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어 법인 설립에 따른 기대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기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미국에 생산법인을 설립할 경우 통상 3~4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 퇴임 때에나 공장을 가동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토로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