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일(현지시간) 미국 하드디스크 업체인 시게이트가 지난달 중국 장쑤성 공장을 폐쇄하고 현지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SCMP는 이번 공장 폐쇄 결정으로 2,000여명의 중국인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덧붙였다.
SCMP는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중순 미국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사인 오라클도 베이징 사무소 인력 200여명을 해고해 연구개발(R&D) 사업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고 전하며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서 인건비 상승에 따른 생산성 저하, 토종기업과의 경쟁 격화로 공장을 철수하거나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등 탈중국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게이트의 중국 공장 철수 결정에 앞서 소니도 지난해 말 광저우에 있는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중국 기업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일부 퇴직자에 대한 보상금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영국 의류 브랜드인 막스앤드스펜서도 최근 적자에 시달리는 중국 현지매장을 모두 철수한다고 결정했고 미국 건축자재 유통회사 홈데포와 화장품 업체 레블론, 일본 파나소닉의 중국 TV 생산공장 등도 이미 중국 사업을 철수한 상태다.
SCMP는 중국에서 짐을 싸는 기업들이 느는 것은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 상승 외에 그동안 해외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중국 정부가 각종 혜택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들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주의 정책으로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토종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도 차이나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게이트의 경우 지난 2014년 말 중국 세무당국으로부터 세금탈루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14억위안(약 2,400억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자국 시장에서 토종기업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등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사업 축소 행렬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주중 미국상공회의소(AmCham-China)가 회원사 532개 기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4분의1가량은 지난해 중국 사업에서 이미 철수했거나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의 이전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보고서에서 “높아진 인건비는 물론 불투명한 법규와 일관성 없는 규제가 글로벌 기업의 중국 사업에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제감면이라는 당근과 국경세 부과라는 채찍으로 기업들을 압박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도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본국 회귀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SCMP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법인세를 35%에서 15%로 낮춘다면 미국 기업은 물론 상당수 중국 제조업체도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고려할 것”이라며 최근 중국 최대 유리제조 업체 푸야오글라스의 차오더왕 회장이 내놓은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서구 매체들도 시 주석이 보호무역주의 배척을 선언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공언했지만 정작 자국에서는 은밀하게 외국 기업을 압박하며 불공평한 이중잣대를 적용해 글로벌 기업들이 점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타이룽 홍콩 중국대 교수는 “중국은 이미 더 이상 선진기술과 해외 투자자본을 얻기 위해 외국 기업들의 도움을 원치 않는 상황”이라며 “당연히 중국 정부도 외국 기업에 대한 지원 혜택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