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관계자는 4일 “국회가 법안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힌 마당에 우리가 거기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법정근로시간에 대한 고용부의 행정해석은 변함 없으며 근로기준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바뀌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일단 대법원의 판결과 국회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정근로시간에 대한 고용부의 기본 입장은 단계적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달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현재 사실상 주 68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는 근로시간을 4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지난 달 16일 노동시장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면 5년간 약 15만개의 일자리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이후 연간 예상 고용 유발 규모(단위 : 명), 자료=고용부
반면 야당은 법 개정 없이 현행 주 52시간의 근로시간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같은 달 20일 “대법원 판결 이전에는 근로기준법을 다루지 않겠다”며 “국회는 1주일에 68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근로기준법을 제정한 사실이 없다. 고용부가 제멋대로 해석해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맞받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일 동안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만 12시간의 범위 내에서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총 52시간까지 근로가 허용되는 셈이다. 정부의 야당의 갈등은 이 법의 해석에서 비롯된다. 고용부는 현행법의 1주일을 평일 5일이라고 행정해석함으로써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8시간의 휴일근로가 추가로 가능하도록 법정근로시간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 68시간까지 근로시간이 늘어난다. 반면 야당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가 1주일이기 때문에 법정근로시간은 52시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법정근로시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휴일근로수당과도 직결된다. 정부의 해석대로라면 휴일에 일한 근로자들은 평일 임금에 50%를 가산해 총 150%를 휴일근로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야당에 따르면 주중에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근로자가 휴일에 일하면 50%의 휴일근로가산금은 물론 추가로 50%의 연장근로가산금도 받게 된다. 평일 임금의 200%를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 관련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만 12건이 계류 중이다. 대법원이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 기업이 일시에 추가부담해야할 금액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산 약 7조6,000억원, 한국경제연구원 추산 12조3,000억원이다. 이후 매년 수조원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기권(왼쪽 두번째)고용부 장관이 지난 1월 5일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대덕지디에스에서 ‘장시간근로 개선 현장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를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첨예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산업현장에서 체감하는 불확실성과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고용부
현 정권 내 근로기준법 개정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노동시장은 불확실성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근로자와 사용자 간 소송이 빗발치는 등 갈등이 증폭될 여지도 다분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년 4개월 동안 국회가 입법을 통해 교통정리를 해주기를 바라며 사실상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 판결을 미뤄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회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정안 처리를 안 하겠다며 대법원을 압박한 만큼 대법원도 더 이상 판결을 늦추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