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갑질 근절’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아야

범정부 차원의 갑질 퇴치작전이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주 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사회적 약자 보호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갑질문화 근절대책을 확정했다. 항공기 내에서 소란을 피우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이유 없이 음주 후 아동·여성·장애인 등에게 폭력을 쓰면 구속 수사한다는 게 골자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원부자재 구매를 강요하거나 청년을 다수 고용하면 심층 조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갑질이 경제·사회 전반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황 대행의 지적처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키운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갑질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배금·물질만능주의가 왜곡된 행태로 표출된 병리 현상이다. 그만큼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열정 페이’ 논란이 식기도 전에 대기업 계열사가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수백억원의 임금을 떼먹는가 하면 ‘땅콩 회항’의 기억이 생생한데도 오너 2·3세의 난동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하청기업에 대한 원청업체의 횡포, 가맹점에 불리한 계약조건을 강요하는 프랜차이즈는 아예 뉴스 거리도 안 된다. 이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일곱 번째로 높을 수밖에 없다.

만연한 갑질에 정부가 단기간 안에 일회성 조치로 대응하려 한다면 큰 판단착오다.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립서비스’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효과가 있으려면 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관리 감독과 단속 같은 일회성 조치 외에 수직적인 대·중소기업 협력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여 갈등을 완화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오너의 자녀라도 능력에 맞는 지위를 부여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평가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매년 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사회적 갈등 해소에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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