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전자, 美에 연산 200만대 가전공장

트럼프 압박에 투자 급물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건설
내년 초부터 냉장고 등 생산



삼성전자가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연산 200만대 규모의 생활가전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 일자리를 가져오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날로 커지면서 삼성전자의 투자계획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대만 폭스콘 등에 이어 삼성전자도 미국 투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행이 계속될지 주목된다.

6일 삼성전자와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 동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생산하는 가전공장을 짓는 계획을 최근 확정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내 첫 가전공장이 될 사우스캐롤라이나 기지는 이르면 내년 1월부터 가동하며 생산량을 점차 늘려 연산 200만대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가 거의 확실하지만 삼성전자가 차선책으로 앨라배마주 등 다른 후보지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투자 요구가 확고한 만큼 삼성전자의 투자 판단이 임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생산기지는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한 곳뿐이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생활가전은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에서 만든다.

삼성전자는 최근 불거진 미국 공장 설립계획에 대해 “앨라배마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투자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삼성전자를 압박하자 계획을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지난 2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고마워요! 삼성, 함께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업계는 트럼프의 트윗 메시지가 삼성전자는 물론 전 세계 기업을 향한 ‘압박 아닌 압박’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현지 기업인 월풀을 누르고 처음으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트럼프로서는 삼성전자의 공장 투자를 요구할 명분이 더욱 커진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티븐슨컴퍼니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내 냉장고·세탁기·건조기·식기세척기·오븐·레인지를 합친 가전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점유율 17%를 기록해 월풀(15.9%), LG전자(15.4%), 제너럴일렉트릭(GE·14.2%) 등을 제쳤다.




연매출 200조원을 넘는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미국 공장 설립에 속도를 내면서 현대자동차와 LG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가전공장 신설과 별도로 오스틴 공장에 올해만도 약 10억달러를 투자해 생산규모를 키우겠다고 지난해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미국 투자계획을 면밀히 검토해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유력한 공장 후보지와 투자 규모를 대강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밖에 LG전자도 올 상반기 중 미국 가전공장 투자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현대차도 오는 2021년까지 5년간 31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미국에 투자하면서 앨라배마에 이어 2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고 밝혔다. GM·폭스콘·포드자동차·캐리어 같은 외국 기업 상당수는 이미 멕시코 등지의 공장 신증설 계획을 접고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공약은 “미국민에게 일자리를 돌려주겠다”로 요약된다. ‘미국산 제품을 구입하고 미국인을 고용하자(Buy American, Hire American)’는 표어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강경한 보호무역 기조를 드러내왔다. 미국에 비해 제조업 인건비가 10분의1 수준밖에 안 되는 멕시코나 중국·베트남에서 유입되는 값싼 제품을 차단하고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직접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벌써 트럼프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멕시코·캐나다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공언했다. 멕시코·중국산 제품에 35~40%가량의 징벌적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도 밝혔다. 기업들이 완제품 조립뿐 아니라 부품공장까지 짓도록 해 국제적 제조업 분업구조를 통째로 미국에 옮긴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다.

이 때문에 가격경쟁력과 지리적 이점을 이유로 멕시코에 앞다퉈 공장을 세웠던 한국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LG전자도 멕시코 북부 레이노사·몬테레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TV·가전을 생산하고 있다. 기아차는 1조원을 들여 지난해 완공한 몬테레이 공장에서 연간 자동차 40만대를 생산해 북미에 수출한다. 현대모비스·현대위아를 비롯한 현대차 계열 부품회사들은 물론 효성·코오롱 같은 화학기업과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업체까지 차량용 부품·소재 시장을 노리고 앞다퉈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짓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투자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워 트럼프가 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속절없이 내야 하는 형편”이라면서 “여기에 다른 나라들이 반발해 보복성 무역장벽을 높이면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기업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처럼 어렵사리 미국 투자를 결심한 기업들도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인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20.73달러로 멕시코(2~3달러)나 한국(약 16.58달러)에 비해 훨씬 높다. 당연히 영업이익률이 5~7%인 생활가전 업계는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수익악화가 불가피하다.

또 기업들로서는 토지 매입과 전력·용수 등 산업 인프라 구축에 드는 비용도 부담스럽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나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세계 시장의 수요를 예측해 설비투자를 진행해왔는데 미국 공장을 추가로 지을 여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면서 “짓는다 해도 세계 경기의 성장세가 미약해 자칫 공장의 상당 부분을 그냥 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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