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비, 재미의 시대] 재미의 심리학

이현비(이창후)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이야기가 재미있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긴장이 해소될 때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것이 중요하다. 두 이야기를 비교해 보자.

첫째 이야기. 만득이가 집에 혼자 있었다. 때는 밤! 게다가 정전까지! 만득이는 방에서 촛불을 켜고 왠지 모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걸 보고는 만득이를 겁주기로 결심한 귀신이 만득이에게 공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준비해~~” 그러자 만득이가 하는 말, “밥밖에 없어…”

둘째 이야기. 엄마 낙타와 호기심 많은 아기 낙타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우리 등에는 왜 이렇게 큰 혹과 넓적한 발이 있어요?” 엄마 낙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응, 그것은 우리가 사막을 여행할 때 오랫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도 견딜 수 있고 또 우리 발이 모래 더미 속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기 위해서란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아기 낙타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 그런데 우리는 동물원에서 뭐 하고 있어요?”


둘째 이야기가 좀 더 낫다. 첫째 이야기는 ‘말꼬리 잡기’와 같은 방식으로 숨은 이야기를 만들어 반전을 꾀한데 반해 둘째 이야기는 상황 전체를 뒤집는 방식으로 반전을 꾀했다. 이런 멋진 반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형상 전이’와 ‘묘한 일치’를 이해해야 한다.

형상 전이는 심리학의 용어인데 우리의 인식이 사물이나 사건의 한 단면에서 다른 단면으로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루빈의 컵이나 네커의 정육면체가 아주 흔한 예이다.

루빈의 컵을 보면, 흰 색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술잔이 보이지만 검은 색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두 사람의 옆 얼굴이 보인다. 또 네커의 정육면체을 보면 A점이 가깝게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B점이 가깝게 있다고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충격적 반전’을 호언장담하는 영화를 봤지만, 맨 마지막 반전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억지 반전은 왜 생기는가? 반전의 복선을 ‘말꼬리 잡기’와 같이 매우 사소한 것에 숨겨 두거나, 아니면 아예 복선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반전이 아니라 엉터리같이 느껴진다.

여기서 ‘형상 전이’와 ‘묘한 일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묘한 일치를 갖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우리 마음에서는 형상 전이가 일어난다. 묘한 일치는 형상 전이를 일으키는, 멋진 창작물이다. 이것을 ‘묘한 일치’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런 멋진 창작물을 만들려면 매우 다른 것이 절묘하게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루빈의 컵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루빈의 컵을 보고 형상 전이를 느끼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형상 전이를 위한 묘한 일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형상 전이와 묘한 일치를 구분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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