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자 세계 각국이 “미국 없는 TPP는 무의미하다”며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PP 무산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중국과 유럽연합(EU)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는 모습이다.
KOTRA는 7일 ‘트럼프의 TPP 탈퇴 서명에 대한 TPP 가입국 반응조사’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TPP 행정명령 서명으로 TPP는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며 “가입국들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른 협정을 가속하거나 주요국과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TPP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주도적으로 추진하던 메가 무역협정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2015년) 기준 TPP 전체 가입국의 64.8%를 차지하는 미국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TPP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남은 11개 가입국이 더 이상 지속은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잇달아 내놓았다. 일본, 캐나다, 멕시코는 “미국 없이는 TPP가 발효될 수 없다”며 “TPP 전체 GDP의 60%를 넘어서는 미국의 탈퇴로 TPP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미국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로 대체해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소수 의견에 불과했다. TPP 무산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은 오는 1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기업의 미국 내 고용과 투자를 강조하며 양국 간 협력의 길을 찾을 계획이다.
미국이 빠진 세계 통상에서 중국과 유럽연합(EU)이 영향력을 높여갈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TPP와 RCEP를 동시 추진하는 국가들은 중국 주도의 RCEP 조기 타결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칠레, 페루 등 남미 가입국도 RCEP 가입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미국 무역 비중을 축소하는 대신 중국과의 교역을 강화할 것을 예고했다.
일본, 베트남은 TPP 구제에 실패할 경우 EU와의 협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태평양동맹(칠레·멕시코·페루·콜롬비아) 가입국은 미국의 TPP 탈퇴 직후 EU와의 통상 협상을 개시했다.
TPP 대신 주요 무역국 및 다른 TPP 가입국과 양자 FTA를 체결하려는 국가도 많다. 캐나다는 일본, 중국, 인도 등과 개별 FTA를 예고했다. 멕시코, 페루 등도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TPP 가입국과 양자 FTA를 체결할 의지를 밝혔다.
윤원석 KOTRA 정보통상지원본부장은 “미국의 TPP 탈퇴가 우리기업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나, 국제 통상질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경우 각국의 연쇄적 비관세 장벽 강화 추세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TPP의 최대 수혜국이던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이 확보되는 등 반사이익이 일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