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북 구미 공단에 자리 잡은 LG실트론 본사(3공장)는 정오가 되자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원들로 붐볐다. 추운 날씨에도 직원들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시내 중심지로 몰려나가며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올해로 3년차가 됐다는 한 엔지니어는 “SK그룹이 실트론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들 회사가 쑥쑥 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OB맥주 공장이 있었던 부지를 매입해 2002년에 세운 LG실트론 구미 본사는 LG그룹 내 위상을 반영하듯 구미시 시미동 공단 구석에 숨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부품인 300㎜ 웨이퍼를 생산하는 LG실트론은 LG가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한 후 비주력 계열사 지위에 머물러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0년대 초부터 솔라·사파이어 같은 중국 기업의 저가공세가 시작되면서 실적도 하락했다. 회사는 2013년과 2014년 각각 180억원, 348억원의 적자를 감내해야 했다.
더욱이 LG실트론은 신기술을 위한 투자도 부족해 세계 웨이퍼 시장을 절반 넘게 차지한 일본 신에쓰화학·섬코 등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도 못했다. 태양광 패널용으로 쓰일 웨이퍼 생산설비에 투자할 자금이 없어 사업을 중단한 것이 그 예다. LG실트론의 또 다른 관계자는 “2013년에는 사무직 인원을 구조조정하고 생산직도 3조3교대에서 4조3교대 근무로 전환해 일하는 시간과 임금을 줄였다”며 “투자가 안 돼 신에쓰·섬코 제품보다 기술력이 떨어지고 실적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LG실트론의 세계 웨이퍼 시장(300㎜ 기준) 점유율은 10~14%로 4위권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LG실트론은 SK하이닉스를 정점으로 반도체를 주력사업으로 육성하는 SK 품에 안기면서 다시 한번 도약의 꿈을 꾸고 있다. SK㈜는 지난달 23일 6,200억원에 경영권을 포함한 LG실트론 지분 51%를 ㈜LG로부터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이르면 오는 9월까지 인수작업이 마무리되면 LG실트론은 SK실트론으로 사명을 바꾸고 SK가 추진하는 반도체 수직 계열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날 만난 LG실트론 구미 본사 직원들은 처우와 고용·조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회사의 미래를 밝게 봤다. LG실트론의 한 직원은 “한 식구가 된 SK하이닉스가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으니 우리의 웨이퍼 공급량도 늘지 않겠냐”면서 “임직원 사이에는 급여도 오르고 SK가 실트론의 성장을 위해 통 큰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 외에 삼성전자·도시바 등에도 웨이퍼를 납품하는 LG실트론은 당분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300㎜ 웨이퍼를 주력 생산하면서 성장을 위한 발판을 다질 계획이다. 본사와 1·2공장이 있는 구미시에서는 LG실트론이 SK하이닉스의 주요 사업장이 위치한 경기 이천이나 충북 청주로 공장을 옮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983년 동부그룹이 미국 몬산토와 합작해 ‘코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LG실트론은 줄곧 구미를 본거지로 삼아왔다. 1995년 이천의 옛 동양전자금속 공장을 인수해 이천에도 기지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 이전설은 있지만 실제 계획이 마련되지는 않았다”며 “어쨌든 SK로의 매각은 잘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